박주봉 감독이 이끄는 한국 배드민턴 대표팀은 오는 19일 개막하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남녀 단체전과 개인전 5종목 등 7개 종목에 나선다.
◆노메달 수모 딛고 다시 황금기로
한국 배드민턴에 아시안게임은 부침이 컸던 무대다. 배드민턴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올림픽 못지않게 어려운 종목으로 꼽힌다. 한국과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등 강호가 아시아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1980년대 중반부터 당시 아시아 최강이던 중국의 높은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1994년 히로시마 대회와 2002년 부산 대회에서는 각각 금메달 4개를 휩쓸었다. 특히 부산 대회에서는 금메달 4개와 은메달 2개, 동메달 3개로 역대 최고 성적을 썼다.
이후로는 내리막이 이어졌다. 2006년 도하 대회에서 금메달을 놓쳤고 2010년 광저우와 2014년 인천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1개씩 따내는 데 그쳤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는 남녀 단체전과 개인전 5종목을 통틀어 메달이 하나도 없었다. 1978년 방콕 대회 이후 40년 만의 노메달 수모를 겪었다.
흐름은 지난 2023년 열린 2022 항저우 대회에서 바뀌었다. 한국은 7개 종목 모두 시상대에 올라 금메달 2개와 은메달 2개, 동메달 3개를 합작했다. 2002년 부산 대회 이후 최고 성적이다. 상승세는 이듬해 2024 파리 올림픽으로 이어졌다. 한국은 금메달과 은메달을 1개씩 따내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최고 성과를 냈다.
지난달 인도 뉴델리에서 막을 내린 2026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개인전 5개 종목 가운데 3개 종목에서 포디움에 올랐다. 안세영이 여자단식 정상에 섰고 여자복식이 깜짝 금메달을 보탰다.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남자복식은 동메달을 수확했다.
국제대회에서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항저우 대회 이상의 성적을 바라본다. 강력한 전력을 갖춘 만큼 역대 최다 타이인 4개 획득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금메달 사냥의 선봉은 안세영이다. 여자단식 세계랭킹 1위인 그는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2023년 세계선수권, 2024 파리 올림픽에 이어 올해 4월 아시아선수권까지 제패하며 한국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올 시즌 성적도 독보적이다. 안세영은 지난 3월 전영오픈 결승전 패배 이후 33연승을 질주하고 있다. 단체전을 포함해 올해 10개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올 시즌 전적은 49승 1패로 승률 98%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자신이 세운 역대 남녀 단식 최고 승률(94.8%·72승 4패)을 넘어설 기세다.
우승 무대도 가리지 않았다. 말레이시아오픈과 인도오픈, 아시아선수권, 싱가포르오픈, 인도네시아오픈을 차례로 제패했다. 부상으로 일본오픈과 중국오픈을 건너뛴 뒤 돌아온 세계선수권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안세영은 지난 6일 중국 선전 아레나에서 끝난 2026 BWF 월드투어 중국 마스터스(슈퍼 750) 여자단식에서는 대회 3연패를 이뤄냈다. 결승에서 세계 9위 미야자키 도모카(일본)를 2대 0(21-17 21-6)으로 제압했다. 세계선수권에 이어 두 대회 연속으로 단 한 게임도 내주지 않았다.
준결승과 결승 상대는 모두 일본 선수였다. 안세영은 준결승에서 세계 3위 야마구치 아카네를 꺾고 결승에 올랐다. 아시안게임이 일본에서 열리는 만큼 두 선수는 경계 대상으로 꼽혀왔다. 야마구치와 통산 전적은 21승 15패가 됐다. 최근 7연승이다. 미야자키에게는 8전 전승을 이어갔다.
안세영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뒤 여자단식 결승에서 천위페이(중국)를 꺾고 2관왕에 올랐다. 당시 여자단식 금메달은 1994년 히로시마 대회 방수현 이후 29년 만이었다.
이번 대회에서도 정상에 서면 새 역사를 작성하게 된다. 한국 배드민턴 사상 첫 여자단식 2연패를 이뤄내게 된다. 아시안게임 배드민턴에서 같은 종목 연속 우승은 혼합복식 김동문·라경민 조의 1998·2002년 제패가 마지막이다. 여자 단체전까지 제패하면 두 개 대회 연속 2관왕이 된다.
안세영을 앞세운 여자 대표팀의 기세도 좋다. 연초 아시아단체선수권에서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고 지난 5월에는 여자 단체전 세계선수권 격인 우버컵도 제패했다. 두 대회에서 안세영은 8승 무패를 기록했다.
여자복식에서는 세계 2위 이소희·백하나(이상 인천국제공항) 조가 금메달 후보로 꼽힌다. 이소희·백하나 조는 지난달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세계 1위 류성수·탄닝(중국) 조를 꺾고 최근 5연패의 사슬을 끊었다. 한국 여자복식이 세계선수권 정상에 오른 것은 1995년 스위스 로잔 대회 길영아·장혜옥 조 이후 31년 만이다.
류성수·탄닝 조는 올해 한국 조들을 상대로 5전 전승을 거둔 천적이었다. 이소희·백하나 조가 최고 권위의 대회 결승에서 설욕한 셈이다.
이소희·백하나 조는 큰 무대에서 강했다. 지난해 12월 시즌 왕중왕전 격인 월드투어 파이널에서 대회 2연패를 달성했고 약 8개월 만에 추가한 트로피 역시 세계선수권이었다. 올 시즌에는 말레이시아오픈과 전영오픈에서 은메달, 인도오픈에서 동메달을 수확했다. 항저우 대회에서는 2002년 부산 대회 이후 21년 만에 아시안게임 여자복식 결승에 올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달 25일 세계선수권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이소희는 취재진과 만나 "올해 한 번도 못 이긴 상대를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이겼다"며 "다가올 아시안게임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고 말했다. 백하나 역시 "금메달을 따고 보니 큰 대회들이더라"면서 "다음에도 더 자신감 있게 경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6위 김혜정·공희용 조도 일본오픈에서 시즌 첫 우승을 합작하며 힘을 보탰다. 다만 공희용의 부상이 변수다. 김혜정·공희용 조는 부상 회복과 아시안게임 준비를 위해 세계선수권과 중국 마스터스에 모두 나서지 않았다.
반면 남자복식은 숙제를 안고 아시안게임을 맞는다. 세계 1위 서승재·김원호(이상 삼성생명) 조는 지난 1일 중국 마스터스 32강전에서 세계랭킹 58위 레오 롤리 카르난도·다니엘 마르틴(인도네시아) 조에 0대 2(19-21 19-21)로 졌다. 부상 기권을 제외하면 지난해 1월 조를 결성한 이후 첫 32강 탈락이다.
내용도 아쉬웠다. 1게임에서 19대 16으로 앞서다 범실이 이어지며 5연속 실점했다. 2게임에서는 11대 12에서 4연속 득점으로 분위기를 바꾸는 듯했으나 곧바로 5점을 내줬다.
지난해와는 사뭇 다른 흐름이다. 서승재·김원호 조는 2025년 안세영과 나란히 단일 시즌 역대 최다승 타이인 11차례 우승을 달성했다. 올해도 1월 말레이시아오픈과 3월 전영오픈, 4월 아시아선수권을 잇달아 제패하며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트로피를 추가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대회에서 은메달 2개와 동메달 3개만 수확했다. 일본오픈과 중국오픈에서 준우승했고 대회 2연패를 노린 세계선수권에서는 준결승에서 세계 4위 에런 치아·소 우이익(말레이시아) 조에 패해 동메달에 머물렀다.
세계 1위 만큼은 내주지 않고 있다. 59주 연속 세계 랭킹 정상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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