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美·中 'AI 위협' 핫라인 뒤에 가려진 G2의 AI 질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AFP연합뉴스]



사흘 앞으로 다가온 미·중 정상회담에서 AI발(發) 안보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핫라인' 구축이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AI가 스스로 해킹을 벌이거나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사태가 발생했을 때 양국이 즉각 소통하자는 취지라고 한다. 냉전기 미·소 정상 간 핵전쟁 방지용 직통선을 떠올리게 한다. 언뜻 들으면 나무랄 데 없는 제안처럼 보인다.

그러나 냉전기의 핫라인과 지금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당시 핵무기를 실전 배치할 능력을 가진 나라는 사실상 미국과 소련뿐이었다. 두 나라만 합의하면 핵전쟁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통제할 수 있었다. 반면 AI가 초래하는 위험은 미국과 중국에만 머물지 않는다.

노동시장 재편, 정보 생태계 교란, 군사적 오남용, 특정 모델과 반도체에 대한 의존까지 파운데이션 AI 모델이 없는 국가 역시 고스란히 그 여파를 떠안는다. 위험의 진원지는 두 나라일지 몰라도 위험의 수신자는 전 세계다. 핵무기는 보유국이 아니면 애초에 위협을 만들어낼 수조차 없었다. AI는 두 나라가 만든 모델과 서비스를 전 세계가 사용하는 순간 그 위험을 함께 나눠 지게 된다는 점에서 구조 자체가 다르다.

그런데 정작 '무엇이 AI 안보 위협이며 어떻게 대응할지'를 정하는 자리에는 미국과 중국만 앉아 있다. 유럽연합도, 일본과 한국도, 개발도상국도 이 논의에 초대받지 못했다.

두 나라가 합의에 이른다면 그것은 단순한 위기 소통 채널의 개설에 그치지 않는다. 사실상 전 세계가 따라야 할 AI 안전 기준의 원형이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못한 나머지 국가들의 동의 없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반도체와 AI 모델 상당 부분을 미·중 두 나라에 의존하는 한국 같은 나라일수록 이렇게 만들어진 기준을 나중에 그대로 떠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아이러니한 지점은 이 두 나라가 다른 한편에서는 'AI 초강국' 자리를 놓고 정면으로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장점유율과 기술 패권을 다투는 경쟁자들이 유독 안전이라는 의제를 놓고 손을 맞잡았다. 미심쩍다.

자국의 AI 산업을 계속 가속하면서 리스크 관리도 직접 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두 강대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맞춰 설계될 가능성이 크다. 나머지 국가들에는 선택지가 없다. 이미 두 나라의 모델과 인프라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정한 안전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논의에서 완전히 소외되는 것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다자간 논의의 틀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영국과 한국이 잇달아 주최한 AI 안전성 정상회의에는 수십 개국이 참여해 공동성명을 냈고, 나름의 국제 공조 모델을 쌓아왔다. 이런 흐름을 두고도 정작 실질적 위기 대응 체계는 미·중 양자 채널로 결정된다면 그동안의 다자 협의는 구속력 없는 요식 행위로 전락하고 만다.

핫라인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AI 사고에 대응하는 최소한의 소통 채널은 필요하다. 다만 그것이 두 나라만의 질서로 굳어지지 않으려면 논의의 문턱부터 낮춰야 한다. AI 안전은 미·중 두 나라의 양자 관계가 아니라 다자간 규범으로 다뤄야 할 문제다.

그 논의 테이블에는 두 강대국의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나머지 국가들의 자리도 마련돼야 한다. 세계 질서를 두 나라가 알아서 설계하고 나머지는 통보받는 구조가 되는 순간, 우리는 핵 시대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더 조용한 방식으로 힘의 불균형을 다시 목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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