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겸 배우 故 설리(본명 최진리)가 세상을 떠난 지 7년이 흘렀다. 스물다섯에 멈춘 그의 시간은 4년 뒤 세상에 공개된 마지막 인터뷰를 통해 다시 이어졌다. 화려한 무대 위의 설리가 아닌, 인간 최진리의 고민과 생각이 담긴 기록이다.
설리는 2019년 10월 14일 경기 성남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25세. 2005년 SBS 드라마 '서동요'로 데뷔한 그는 2009년 그룹 에프엑스(f(x)) 멤버로 가요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가수와 배우를 오가며 활동했지만, 자신의 생각과 사생활을 둘러싼 지나친 관심과 악성 댓글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가 떠난 지 4년이 흐른 2023년 10월, 생전 촬영한 마지막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 '진리에게'가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다. 같은 해 11월 13일에는 넷플릭스를 통해 더 많은 시청자와 만났다.
정윤석 감독이 연출한 '진리에게'는 2019년 촬영한 인터뷰를 중심으로 설리의 삶과 내면을 조명한다. 익숙한 예명 대신 본명 최진리로서 자신이 겪어온 일과 고민을 털어놓는다.
설리는 인터뷰에서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발을 들이며 겪었던 압박을 이야기했다. 자신을 하나의 '상품'처럼 취급하는 시선 속에서 대중이 원하는 모습에 맞춰야 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깎아내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어려웠던 경험, 타인의 기대에 맞추는 데 익숙해진 삶을 돌아봤다. 여성의 옷차림과 행동에 적용되는 사회적 잣대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대중 앞에서 거리낌 없이 의견을 표현하던 모습과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그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순간 불편함을 느끼는지 알아가는 과정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에프엑스 멤버들과 함께했던 시간과 서로의 빈자리가 갖는 의미도 이야기했다.
영화에는 인터뷰뿐 아니라 고인의 일기장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록, 애니메이션 등이 활용됐다. 정 감독은 유족의 협조를 얻어 고인의 유품과 자택을 촬영했다고 밝혔다.
눈길을 끄는 건 설리가 말을 멈추는 순간들이다. 질문을 듣고 곧바로 답하기보다 생각에 잠기거나 침묵하는 모습이 화면에 담겼다. 영화는 그 시간을 서둘러 건너뛰지 않는다. 정 감독이 기억하는 최진리 역시 대중에게 알려진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었다.
그는 2023년 10월 7일 부산국제영화제 관객과의 대화에서 설리가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기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연출 방향을 설명할 때도 먼저 듣고 상대방의 입장을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
정 감독은 이러한 모습이 대중에게 알려진 설리의 이미지와 대척점에 있다고 설명했다.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인물로 비쳤던 설리가 실제로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려 애쓰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다.
'진리에게'는 설리가 주연한 단편 극영화 '4: 클린 아일랜드'와 함께 '페르소나: 설리'라는 이름으로 공개됐다. 당초 여러 감독이 설리를 주인공으로 각각의 작품을 만드는 프로젝트였으나,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제작이 중단됐다.
황수아·김지혜 감독이 공동 연출한 '4: 클린 아일랜드'는 새로운 삶을 꿈꾸는 인물이 기묘한 입국 심사를 받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작품이다. '진리에게'가 최진리의 실제 목소리를 담았다면, '4: 클린 아일랜드'는 배우로서 그의 마지막 연기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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