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본지는 무뚝뚝했던 공단 도시 구미가 산업 자산을 보석 같은 관광 도시로 재탄생시켰는지 원도심 상권의 변화와 지속 가능한 도시 브랜드로서의 과제를 상·하 2회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주>
그 묵직하고 차가웠던 공장지대의 아스팔트 위로 어느 날 정겨운 매콤함이 피어올랐다. 가을 바람을 타고 불어온 고소한 스프 향이 도시를 감싸 안았고 무뚝뚝하게 자리를 지키던 거대한 산업 유산은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토닥이는 따스한 온기로 다시 태어났다.
이제 구미에서 라면은 허기를 채우는 단순한 한 끼 끼니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헛헛했던 도심 구석구석을 사람의 온기로 가득 채우고 잊혀가던 골목길에 다정한 웃음소리를 되찾아준 가장 가슴 따뜻한 '공공의 예술'이자 핵심 콘텐츠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공장에서 나온 라면 한 그릇’… 자리를 지켜온 산업 유산의 정겨운 반전
라면축제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가장 큰 감동은 어디선가 억지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이미 우리 곁에서 숨 쉬던 삶의 터전'에서 시작됐다는 점에 있다.구미국가산업단지 한 가운데에는 수십 년간 묵묵히 라면을 튀겨내며 수많은 근로자와 시민의 고단한 삶을 보듬어온 농심 구미공장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구미시 행정가들은 이 무뚝뚝한 공장 담장 너머를 수없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바라본 끝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가치를 발견했고 그것이 바로 '갓 튀긴 라면'이 품은 신선함이었다.
라면은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먹을 순 있지만 “공장에서 방금 막 구워져 나온 라면을 그 도시의 정겨운 바람을 맞으며 맛본다”는 시적인 경험은 오직 구미에서만 허락된 특별한 선물이다.
축제장에 도착한 제품은 공장에서 튀겨진 지 불과 몇 시간 길어야 며칠을 넘기지 않은 따끈한 신선함 그 자체이다.
기름의 산화를 거치기 전 면발이 품은 깊은 고소함과 바삭함은 방문객들의 입안에서 오롯이 작은 탄성으로 터져 나온다.
"오늘 아침 구미 공장에서 나온 라면을 바로 끓여 드립니다" 이 소박하지만 진심 어린 한 문장은 SNS를 타고 전국의 정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세차게 흔들었다.
'갓튀라면' 한 봉지를 손에 쥐기 위해 수백 미터의 긴 줄을 서면서도 사람들의 얼굴에는 짜증 대신 설렘과 미소가 가득했고 그들이 남긴 자발적인 인증샷은 전국 구석구석으로 널리 퍼져나갔다.
실제로 지난해 축제장에서는 갓 튀긴 라면 약 48만개와 정성껏 끓여낸 라면 요리 5만 4000그릇이 따뜻하게 손님들에게 전달됐다.
약 6억원이라는 결실은 정직하게 땀 흘려온 지역 상인들의 삶을 받쳐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쇠퇴해가던 원도심 골목길에 흐르기 시작한 '사람의 정과 온기'
하지만 축제가 만든 진짜 눈물겨운 반전은 '공간의 이동'에서 그 꽃을 피웠다.첫해인 2022년, 외곽의 낙동강체육공원에서 1만 5000명의 소소한 온기로 출발했던 라면축제는 이듬해 과감하면서도 따스한 결단을 내린다.
온기가 꺼져가던 구미역 앞 중앙로와 새마을중앙시장, 금리단길 등 원도심 골목 한복판으로 축제의 장을 전격 끌어안은 것이다.
공단 경기 침체와 신도시 개발로 어두운 그늘이 지던 옛 도심 골목길에 구미시는 축제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생기와 활력'을 직접 흘려보내는 진심 어린 승부수를 던졌다.
결과는 가슴 뭉클한 기적이었다. 2023년 8만명, 2024년 17만명을 거쳐 지난해에는 무려 35만명의 정겨운 발길이 골목골목을 가득 메웠다.
불과 3년 만에 23배나 솟구친 수치였다. 특히 지난해 구미를 찾은 외지 방문객은 14만 5430명으로 전년보다 77%나 늘어나며 전국에서 손님이 정을 찾아 찾아오는 따뜻한 보금자리로 자리매김했다.
축제 기간 기차를 타고 구미역에 내린 방문객들은 승강장 문이 열리자마자 활기찬 시장 골목의 온기 속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었다.
구미역 승하차 인원은 11% 이상 늘어났고 인근 버스정류장 역시 오랜만에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온기로 북적였다.
사람의 발길이 끊겨 텅 비어가던 골목 식당과 카페, 전통시장 상인들의 얼굴에는 지쳐있던 기색 대신 오랜만에 환한 웃음꽃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도로 통제라는 소소한 불편을 기꺼이 견뎌낸 상인들은 이제 "우리 골목에서 축제를 더 크게 열어 달라"며 먼저 상생의 손을 내밀었다.
김장호 구미시장 역시 “구미를 명실상부한 ‘라면의 성지’로 정착시키는 동시에 지역 경제와 상생하는 지속 가능한 문화관광 축제로 키워나가겠다”는 구상을 확고히 하고 있다.
행정이 시민의 삶터와 골목상권에 진심으로 다가섰을 때 지친 삶의 현장이 어떻게 살아나는지 보여준 가장 감동적인 지방자치의 모범 답안이다.
기업을 품고 시민을 웃게 한 '낭만 행정'의 넉넉한 결실
구미 라면축제는 지자체와 지역 기업이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따뜻하게 손잡았을 때 어떤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지를 다정하게 증명했다.지자체는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기업의 가치를 드높여주고 기업은 축제를 통해 받은 사랑을 시민들에게 따뜻한 온정으로 되돌려주는 아름다운 선순환을 완성했다.
농심은 자사의 기술력과 캐릭터, 제품을 아낌없이 내놓았고 구미시 역시 ‘낭만축제과’라는 전담 조직을 세워 교촌치킨 1호점의 서사와 연계 상품, 정겨운 지역 굿즈들을 세심하게 다듬어냈다.
연고도 없는 외지 콘텐츠로 시민들의 소중한 세금을 허투루 쓰던 쓸쓸한 전례들과 비교하면 구미시 공무원들이 밤을 지새우며 고뇌하고 발로 뛰어 얻어낸 이 결실은 격이 다른 행정적 안목이자 낭만이다.
3분의 마법을 넘어, 구미가 따스하게 써 내려갈 100년의 약속
'갓 튀긴 3분'의 마법으로 무뚝뚝했던 공단 도시의 정체성을 따스하게 감싸 안은 구미 라면축제. 그러나 축제의 화려한 조명이 꺼진 뒤에도 구미시가 걸어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다.수십만 방문객이 남기고 간 감사함 뒤로 교통과 휴게 인프라의 부족함을 차근차근 다정하게 채워내는 일.
그리고 축제가 끝난 뒤에도 언제든 구미를 찾아 라면 한 그릇의 온정을 느낄 수 있도록 도심 전체를 영속적인 문화와 휴식의 공간으로 가꾸어 가는 일이다.
지난 여름 예능 방송 하나에 500만 유저가 가슴 떨리게 응답하고 지역 상점 매출이 6배나 껑충 뛰어오른 까닭은 구미라는 도시가 품은 '따뜻하고 정겨운 라면의 서사'에 대중이 이미 마음을 훈훈하게 열었기 때문이다.
무심하게 지나쳤던 공장 굴뚝의 연기를 가장 고소하고 낭만적인 관광 자원으로 바꾼 구미시 공무원들의 집념.
이제 구미 라면축제는 일시적인 흥행을 넘어 시민에게는 깊은 자부심을, 방문객에게는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하며 구미의 지속 가능한 100년 미래로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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