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오는 25일 별세 6주기를 맞는다. 과감한 투자와 기술 혁신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이끌고, 품질 중심의 경영 혁신을 통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그의 경영 철학이 재조명되고 있다. 생전 수집한 문화재와 미술품도 국내를 넘어 해외 주요 박물관에서 전시되며 한국 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이 선대회장은 1974년 자금난에 빠진 한국반도체에 개인 재산을 투자하며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국내 전자산업은 핵심 부품을 해외 기술에 의존하던 시기였다. 삼성 내부에서도 사업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지만, 첨단산업 육성을 통해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투자를 추진했다.
삼성은 1983년 이병철 창업회장의 도쿄선언을 계기로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같은 해 64K D램 개발에 성공했고,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했다. 이듬해인 1993년에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에 올랐다. 반도체 사업에 첫발을 내디딘 지 약 20년 만이다.
세계 1위 도약의 배경에는 불황에도 투자를 지속한 선행투자 전략이 있었다. 삼성은 1984년 경쟁사들이 4인치 웨이퍼 생산라인을 확대할 때 6인치 웨이퍼로 전환했고, 1987년 일본 업체들이 반도체 투자를 축소하던 시기에도 신규 생산라인을 건설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글로벌 D램과 낸드 시장 점유율은 각각 39.4%, 29.3%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미래 기술에 대한 선제적 투자와 인재 육성도 주요 경영 원칙이었다. 이 선대회장은 반도체와 컴퓨터, 소프트웨어, 로봇 등 첨단기술의 융합을 강조하며 산업구조의 변화를 예견했다. 1990년에는 직원들이 해외 현지 언어와 문화, 시장을 익히도록 하는 지역전문가 제도를 도입했다. 국적과 출신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인재 경영을 통해 글로벌 사업 확대의 기반을 마련했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발표한 '신경영 선언'은 삼성의 경영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양적 성장에서 품질 중심으로 경영 기조를 전환하고 조직문화와 생산체계 전반의 혁신을 추진했다. 1995년 구미사업장에서 약 500억원 규모의 불량제품을 폐기한 화형식은 품질경영 의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이 선대회장의 유산이 이어지고 있다. 유족들은 2021년 이 선대회장이 평생 수집한 문화재와 미술품 2만3000여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비롯해 김환기와 박수근, 이중섭 등 국내 주요 작가들의 작품이 포함됐다. 기증품의 국내 순회전 누적 관람객은 350만명을 넘어섰다.
해외에서도 한국 미술의 가치를 알리는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시작된 'KH 컬렉션' 국외 순회전은 올해 3월 시카고미술관을 거쳐 이달 영국박물관으로 무대를 옮겼다. 고려청자와 조선시대 서화, 근현대미술 등을 통해 한국 예술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이 선대회장은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취임해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 육성과 경영 혁신을 주도했다. 2014년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투병하다 2020년 10월 25일 별세했다. 별세 6주기를 맞아 산업 경쟁력 강화와 문화유산 보존에 남긴 발자취가 다시 조명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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