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그곳에는] 1억년 전 공룡이 걸었다…입암리가 품은 백악기의 시간

  • 최소 7개 지층에 반복된 발자국…우기엔 잠기고 건기엔 드러난 호숫가

  • 골반 높이 1.16m 조각류 시속 2.3㎞ 이동…8.2m 보행렬엔 꼬리 흔적까지

  • 세계 9개국 50여건뿐인 희귀 행동생흔…국내 유일 보존지서 천연기념물 추진


지금은 태화강 물길을 따라 산책객이 오가는 울산 울주군 범서읍 입암리. 시간을 약 1억년 전으로 돌리면 이곳의 풍경은 전혀 달라진다.

비가 많이 내리는 계절이면 물이 차오르고 건기가 되면 진흙 바닥 일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얕은 호수 가장자리였다. 그 위를 공룡들이 걸었다.

한두 번 지나간 것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최소 7개 지층에서 발자국이 반복적으로 발견됐다. 어느 공룡은 네 발로 천천히 호숫가를 걸었고, 또 다른 순간에는 몸 일부를 물에 담근 채 이동하면서 꼬리를 바닥에 끌었던 흔적까지 남겼다.

울산시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지난 5월부터 6개월간 진행한 '울주군 입암리 화석산지 가치규명 학술연구'는 입암리의 공룡발자국을 단순한 화석 몇 점이 아니라 1억년 전 울산의 자연환경과 공룡의 움직임을 함께 보여주는 기록임을 확인했다.

 

일곱 겹 지층에 남은 발자국…공룡들이 반복해서 찾은 호숫가

 

연구지역에서 관찰되는 고토양층 사진울산시
연구지역에서 관찰되는 고토양층. [사진=울산시]


입암리 화석산지에는 중생대 백악기인 약 1억년 전에 형성된 퇴적층이 분포하고 있으며 이번 연구에서는 최소 7개 층준에서 공룡발자국이 확인됐다.

여러 층에서 발자국이 발견됐다는 것은 공룡 한 마리가 우연히 한 번 지나간 흔적이라기보다 오랜 시간에 걸쳐 공룡들이 이 일대를 활동공간으로 이용했음을 보여준다.

발자국 주변에서는 물결자국과 빗방울 자국, 오래된 토양층과 함께 불규칙한 다각형 균열과 가스 구조도 확인됐다.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당시 입암리 일대가 우기에는 물에 잠기고 건기에는 일부 지면이 드러나는 호수 가장자리였던 것으로 해석했다.

일부 퇴적면에서는 미생물막이 발달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 같은 미생물 활동이 공룡이 남긴 발자국이 오랫동안 보존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골반 높이 1.16m…시속 2.3㎞로 천천히 걸었다

 

연구대상지 전경 사진울산시
연구대상지 전경. [사진=울산시]


2012년 처음 확인된 A지점에서는 대형 조각류 공룡이 네 발로 이동한 보행렬이 확인됐다.

발자국은 조각류의 생흔속인 카리리크니움(Caririchnium)에 해당하며 앞발과 뒷발 자국이 함께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다.

연구진은 발자국의 크기와 보폭 등을 토대로 이 공룡의 골반 높이를 약 1.16m로 추정했다. 이동속도는 시속 약 2.3㎞였다.

빠르게 달린 흔적이 아니라 비교적 느린 속도로 호숫가를 이동한 기록이다.

발자국 화석은 뼈 화석과 달리 공룡이 살아 있을 당시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입암리의 보행렬은 공룡이 어느 방향으로, 어느 정도의 속도로 이동했는지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8.2m 이어진 꼬리 흔적…국내 유일 '행동의 기록'

 

입암리 공룡 보행렬과 공룡꼬리 끌림 흔적 사진울산시
입암리 공룡 보행렬과 공룡꼬리 끌림 흔적. [사진=울산시]


입암리에서 가장 희소성이 높은 흔적은 C지점에서 확인됐다.

약 8.2m에 걸쳐 이어지는 사족보행렬 중앙을 따라 공룡의 꼬리가 퇴적면에 닿으며 만들어진 '꼬리 끌림 흔적'이 이어졌다.

공룡 꼬리 흔적은 발자국보다 훨씬 드물다. 현재까지 프랑스와 미국, 중국, 한국 등 세계 9개국에서 보고된 사례가 50여건에 불과하다.

국내에서는 2011년 충북 영동에서 처음 확인됐지만 해당 화석산지가 이후 사면 붕괴로 소실돼 현재 입암리는 국내에서 꼬리 끌림 흔적이 보존된 유일한 화석산지로 평가된다.

특히 이곳에서는 앞발자국이 뒷발자국보다 매우 작고 얕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공룡의 몸 일부가 물에 잠긴 상태에서 이동하면서 부력을 받았거나 무른 바닥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행동학적 가설로 제시했다.

공달용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는 "입암리 화석산지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여러 층준의 공룡발자국과 보행렬, 희소한 꼬리 끌림 흔적, 다양한 퇴적구조가 하나의 지질학적 맥락 안에 함께 보존돼 있다"며 "백악기 공룡의 행동과 당시 환경, 발자국이 형성·보존된 과정을 종합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1억년 전 발자국에서 울산의 지질유산으로


이번 연구에서는 주요 공룡발자국과 보행 흔적을 3차원 스캐닝과 드론 사진측량으로 정밀 기록했다.

연구진은 학술성·대표성·희소성·보존성·교육성 등을 종합할 때 입암리 화석산지가 높은 지질유산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현재 울산국가지질공원의 예비 지질명소인 입암리를 정식 지질명소로 편입하고, 국가지정유산인 천연기념물 지정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화석층 보호를 위한 관람시설과 안전동선을 마련하고 전문가 입회 아래 피복 퇴적물을 제거해 추가 화석 분포를 확인하는 방안도 함께 제안됐다.

선바위에서 국수천 습곡, 천전리·대곡리, 반구천 암각화까지 이어지는 '지오트레일'을 구축해 태화강과 대곡천 일대의 지질·문화유산을 하나의 탐방축으로 연결하는 구상도 나왔다.

입암리 화석산지는 2012년 국가유산청의 '한국의 지질다양성-울산지역' 조사에서 처음 확인됐으며, 지난해 울산국가지질공원 인증 신청 때 예비 지질명소로 선정됐다.

울산시는 이번 연구성과를 토대로 정식 지질명소 편입과 천연기념물 지정 가능성을 검토하고 체계적인 보존·관리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울산시 관계자는 "입암리 화석산지는 약 1억년 전 태화강 일대의 환경과 공룡의 삶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질유산"이라며 "시민과 학생들이 백악기 울산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배움의 장으로 가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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