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출 호황으로 우리나라 경상수지가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했지만 국내외 투자자금은 해외로 향하고 있다. 수출을 통한 달러 공급이 확대되는 가운데 내국인의 해외주식·채권 투자가 이어지고 외국인의 국내주식 매도까지 늘어나면서 환율 하락 압력을 상쇄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9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내국인의 해외직접투자는 114억3000만 달러 증가해 전월(62억2000만 달러)보다 증가폭이 확대됐다. 해외증권투자도 166억3000만 달러 늘어 전월(166억 달러)에 이어 두 달 연속 160억 달러를 웃돌았다. 직접투자와 증권투자를 합친 증가액은 280억6000만 달러에 달한다.
해외증권투자 중 주식은 99억1000만 달러, 채권은 67억2000만 달러 각각 증가했다. 해외주식 투자는 전월(101억5000만 달러)보다 소폭 줄었지만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해외채권 투자는 전월(64억4000만 달러)보다 증가 폭이 확대됐다. 올해 1~9월 누적 해외증권투자 증가액은 909억2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해외채권 투자 확대에는 글로벌 금리 상승과 원·달러 환율 하락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국채금리 상승으로 신규 채권의 투자 수익률이 높아진 데다 원화 강세로 달러화 자산을 매입하는 데 필요한 원화 부담도 줄어든 것이다. 김영환 한은 경제통계1국장은 "글로벌 금리가 오른 면도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 환율이 하락한 영향도 있어 해외채권 투자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반면 외국인은 국내 증시 자금을 대거 회수했다. 9월 외국인의 국내증권투자는 138억1000만 달러 감소해 전월(-48억5000만 달러)보다 감소폭이 크게 확대됐다. 특히 국내주식 투자 감소액이 137억4000만 달러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외국인의 국내주식 매도 배경으로는 원화 강세에 따른 환차익 실현과 고금리 부담, 반도체 업황 정점 우려 등이 거론된다. 원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환차익을 확보하기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 가운데 인공지능(AI) 투자 과열 논란과 미국 중간선거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투자심리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경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고금리, 반도체 피크아웃, AI 버블 논란, 중간선거 집권당 패배 우려 등 시장 하락과 외국인 매도세의 이유는 다양하다"며 "다만 현재 코스피의 외국인 매도세는 상당히 고착화되고 추세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해외투자 확대는 경상수지 흑자가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일부 상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경상수지 흑자는 달러 공급을 늘려 환율 하락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내국인의 해외증권투자는 달러 매수 수요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의 국내주식 매도 역시 투자자금이 해외로 회수되는 과정에서 달러 수요를 늘릴 가능성이 있다.
다만 경상수지 흑자액이 모두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로 매도되는 것은 아니다. 수출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외화로 보유하거나 해외에 재투자할 수 있고, 해외증권투자 역시 환전 없이 이뤄질 수 있어 실제 외환시장 수급과는 차이가 발생한다.
김 국장은 "경상수지 흑자는 총량적인 측면에서 달러 공급 요인이기 때문에 환율 하락 요인이지만, 환율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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