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AI 시대 민주주의, 시민은 계속 주권자일 수 있나

이상영 법무법인유 JR 변호사 사진법무법인유 JR
이상영 법무법인(유) JR 변호사 [사진=법무법인(유) JR]


요즘 어딜 가나 AI가 화두다. 자기소개를 할 때면 분위기를 풀어 보려고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인공지능(AI)으로 없어질 직업 1순위, 변호사입니다."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누구나 크든 작든 비슷한 불안을 안고 사는 듯하다. 그런데 걱정은 일자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AI가 직업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토대까지 흔드는 것은 아닐까.

민주주의는 선언만으로 유지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시민의 경제적·군사적 기여는 권리 확대의 중요한 동력이었다. 고대 아테네가 대표적이다. 민회의 발언권은 스스로 무장해 밀집대형을 이룬 자영농 중장보병에게서 출발했다. 결정적 전환점은 페르시아 전쟁의 살라미스 해전이었다. 함대의 노를 저은 것은 무장할 재산조차 없던 최하층 시민이었다. 도시를 구한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기 어려워지면서 아테네 민주주의는 한층 넓어졌다. 근대도 다르지 않다.

두 차례 세계대전은 국가가 전 국민을 동원한 총력전이었다. 참전 군인들은 귀환 후 더 큰 발언권을 요구했다. 전선으로 떠난 남성을 대신해 군수공장을 돌린 여성들의 오랜 참정권 요구에도 마침내 힘이 실렸다. 영국과 미국에서 1차 대전 직후 여성 투표권이 확대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후 산업사회에서 대다수 시민은 공장 노동자와 사무직 지식노동자가 되었다. 이로써 '1인 1표'의 평등은 경제적 실체를 갖춘 보편 가치로 자리 잡았다. 우리가 누리는 대중민주주의는 이 토대 위에 서 있다.

생성형 AI는 바로 이 토대를 흔든다. 거대언어모델은 보고서 작성, 법률 검토, 코딩 등 화이트칼라 지식노동을 상당 부분 대체하기 시작했다. 로봇과 결합한 '피지컬 AI'는 공장과 물류 현장의 블루칼라 노동에도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변화를 예고한다. 노동 가치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다수 시민이 지금까지 누려온 경제적 지위는 약해질 수 있다.


안보 측면은 더 직접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값싼 드론이 숙련된 병사와 값비싼 전차를 무력화하는 장면을 거듭 보여줬다. 2026년 봄 독일에서 열린 모의전투 합동훈련에서는 대드론 장비까지 갖춘 미군 기갑여단이 우크라이나 드론 부대에 사실상 전멸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장에서 개별 병사의 힘이 차지하는 비중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시민 다수가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된다고 해 보자. 그때도 권력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까. 석유 수입에 기대는 산유국 정부는 세금을 내는 국민을 덜 두려워한다. 마찬가지로 AI와 자본만으로 부와 힘을 만들어내는 권력은 시민의 동의를 덜 필요로 하게 될 수 있다. 이러한 권리 축소는 쿠데타처럼 요란하게 오지 않으며, 조용히 그러나 부지불식간에 진행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변화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할 수는 없다.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근대 민주주의가 쌓아온 원칙은 인간의 존엄이 쓸모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권리의 확대가 기여와 맞물려 왔다면 이제는 그 고리를 끊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준비는 지금 시작해야 한다. 첫째, AI가 만든 부가 소수에게만 집중되지 않아야 한다. 혁신 동력을 살리면서도 그 성과가 공공 기금이나 국민 지분 같은 형태로 사회 전반에 돌아가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군사·치안 분야 AI에 대한 의회와 시민의 통제 원칙을 법제화해야 한다. 무기 운용에서 사람에 대한 의존이 줄어들수록 그 무기를 다루는 권력은 더 엄격히 견제받아야 한다. 셋째, 교육과 직업 체계를 AI를 '활용하는 시민'을 길러내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국가는 시민을 위해 존재한다. AI 역시 시민의 행복과 풍요, 안전을 위해 쓰여야 한다. 기술이 시민을 대체하는 시대에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은 분명하다. 바로 시민이 기술의 주인이 되도록 제도를 먼저 철저하게 설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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