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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하게만 스나베(왼쪽)ㆍ빌 맥더멋 SAP 공동 CEO |
급박하게 돌아가는 비즈니스환경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속도전은 신임 CEO가 아니고서는 해내기 힘들다는 게 경영 전문가들의 평가다. 흔히 위기에 처한 기업들은 경영진 교체를 통해 내부 변화와 혁신을 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신임 CEO가 취임 초기에 인수합병(M&A)과 같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
대답부터 말하면 '그렇다'다. 영국 런던 시티대 카스(Cass) 비즈니스스쿨의 M&A연구센터(MARC)가 유럽 171개 기업의 신임 CEO 27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취임 1년 안에 빅딜 1건을 성사시킨 CEO가 그렇지 못한 CEO보다 장기적으로 더 우수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취임 1년도 안 돼 두세 차례 이상 M&A를 추진한 CEO의 실적은 상대적으로 뒤쳐졌다.
또 취임 초반 기존 사업 부문 가운데 일부를 매각한 CEO는 새로운 사업 부문을 사들인 CEO보다 실적이 좋았다. 이런 성과는 취임 2년까지 이어졌는 데 현금이 절실한 기업일 수록 효과가 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7일(현지시간) 이같은 조사 결과를 전하며 새 CEO가 경영 전략의 획기적인 변화를 꾀하는 것은 유효하지만 한 번 이상의 전술 변경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신임 CEO는 '결단'을 내리는 데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Marc에 따르면 1년 이상 한 기업에 머물러 있는 CEO들의 평균 임기는 4.4년이다. 5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CEO라면 자리를 내줘야 한다.
스캇 모엘러 MARC 책임자는 "대형 딜을 성사시킬 수 있는 기회는 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필요로 할 때 찾아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임 CEO는 신속한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2004년 글로벌 의류유통업체인 막스앤드스펜서(M&C)의 CEO로 영입된 스튜어트 로즈는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아 M&C의 신용카드 사업 부문을 80억파운드에 HSBC로 넘겼다. 로즈가 용단을 내린 것은 당시 M&C를 통째로 사들이려고 했던 영국 9대 부호 필립 그린으로부터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영국 보험사 프루덴셜이 미국 경쟁사 아메리카인터내셔널(AIG)의 아시아 자회사인 AIA를 인수하려 하는 것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려는 양사 신임 CEO의 뜻이 맞았기 때문이라고 FT는 분석했다. 프루덴셜의 티잔 티암과 AIG의 로버트 벤모시 CEO는 취임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FT는 SAP의 신임 CEO처럼 업계 환경과 기업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내부 인사가 추진하는 빅딜은 기업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맥더멋과 스나베는 업계에 대한 정보와 경험이 충분했기 때문에 취임 3개월도 안 돼서 사이베이스를 사냥감으로 낙점할 수 있었다.
물론 외부에서 CEO가 영입되면서 이전에는 절대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던 딜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FT는 다만 구체적인 계획 없이 무리하게 빅딜에 '올인'하는 것은 오히려 화를 부를 수 있다며 섣부른 행동을 경계했다. 리더십 전문가로 '처음 90일(The First 90 Days)'이라는 책을 낸 마이클 왓킨스는 "CEO는 기업 수장에 오른 직후 처음 몇 달간이 가장 흔들리기 쉽다"며 "앞으로 직면하게 될 어려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할 뿐더러 위기 대응능력이나 판단능력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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