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역사상 ‘포스트(post) 현대그룹’ 만큼 모진 풍파를 겪은 그룹도 없다. 여기서 포스트 현대그룹이란 정주영 회장 은퇴 후 정몽헌 회장이 이끌고, 현정은 회장이 계승한 현재의 현대그룹을 말한다.
창업주의 죽음과 뒤따른 아들들의 경영권 분쟁, 그리고 계열 분리… 산고 끝에 탄생한 정몽헌의 현대그룹은 더 이상 83개 계열사를 거느린 국내 최대 규모의 그룹이 아니었다. 재계 순위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정몽헌 회장은 선대 회장의 유지인 대북사업의 끈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는 대표의 자살이라는 사상 초유의 비극을 초래했다. 지난 2003년 대북송금과 관련한 검찰 수사에 연루돼 고민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련의 역사… ‘포스트(Post) 현대그룹’ 10년 = 그 뒤로도 시련은 계속됐다. 고(故) 정몽헌 회장의 미망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정주영-정몽헌 회장의 뒤를 이어 대북 사업을 이어갔다. 하지만 2006년 북핵 사태,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또 올해 천안함 침몰 사태 등 정치 이슈로 끊임없이 사업을 중단해야 했다.
끊임없는 경영권 분쟁도 현대그룹의 발목을 잡았다. 정몽헌 회장 때의 왕자의 난에 이어 고(故) 정몽헌 회장이 작고한 2003년에는 정주영 회장의 막내동생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경영권을 다퉈야 했다. 이른바 ‘시숙의 난’이었다.
지난 2006년에는 정몽준 의원이 최대 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그룹과 싸워야 했다. 현대중공업이 현대그룹 지배구조의 중심에 있는 현대상선 지분 26.68%를 전격 인수한 것이다. 현대그룹의 명목상 지주회사는 현대엘리베이터지만, 현대상선은 현대엘리베이터의 대주주일 뿐 현대아산, 현대택배, 현대증권 등 그룹 내 대부분 계열사를 아우르는 것은 현대상선이다.
두 차례의 경영권 분쟁은 현대상선 지분 8.3%를 보유한 현대건설 인수합병(M&A) 연기로 뒤로 미뤄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정은 회장은 이 같은 시련의 과정에서 ‘철의 여인’, ‘뚝심 경영’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등 주요 계열사의 재무구조는 지난 2003년 이후 조금씩 개선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선박경기 침체로 다시 위기를 맞았다.
현대그룹은 지금도 외환은행 등 채권단과 현재까지 재무구조약정 체결을 놓고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특히 이는 범(汎) 현대가와 며느리 현 회장의 경영권 분쟁의 결정판이 될 현대건설 인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현 회장의 고심을 깊게 만들고 있다. 재무구조약정 체결시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추가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6년여 동안 모진 풍파를 이겨내 온 현 회장의 현대그룹이 이번에는 또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대북사업… 금강산관광부터 개성공단까지= “금강산 관광은 계속돼야 한다. 선대 회장께서 물려주신 그룹을 잘 키워 글로벌 선도그룹으로 한 단계 성장시키고, 대북사업으로 통일의 초석을 놓는 건 반드시 이뤄내야 할 역사적 사명이다.”
현정은 회장은 지난 4월 12일 서울 연지동 현대그룹 신사옥에서 임직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현대그룹 경영에 있어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선대 회장의 마지막 유업(遺業)이라는 점, 이를 대체할 만한 기관.단체가 없다는 점에서 단순한 경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지난 1998년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전 세계가 주목한 가운데 벌인 ‘소떼 방북’으로 물꼬를 튼 대북사업은 2001년 정주영 작고 후에 ‘대북 전도사’를 자임했던 고(故) 정몽헌 회장과 현정은 현 회장으로 이어졌다.
2000년 선대 회장과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의 면담으로 개성공단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뒤 2002년 착공에 들어갔다. 대북 로비자금 송금 문제가 불거지긴 했지만 2004년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 이래 지금까지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명맥은 이어져 오고 있다.
이에 앞선 1998년 11월 18일부터는 금강산관광이 시작됐다. 한국 민간인이 북한을 여행하는 획기적인 남북관계 발전이었다. 첫 관광 후 6년 만인 2005년 관광객 100만명을 돌파하는 등 남북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으나 2008년 7월 11일 관광객이 북한국의 피격으로 사망하며 지금까지 잠정 중단돼 있는 상태다.
◆정몽헌 회장은 어떤 사람= 정몽헌 회장(1948~2003년)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여섯째 아들로 1975년 현대중공업에 사원으로 입사한 이래 현대상선.현대전자.현대엘리베이터.현대건설.현대종합상사 등지의 대표이사를 거쳤다.
1998년 맡형 정몽구 회장과 함께 그룹 공동 회장직을 맡아 그룹 경영에 참여했으나 2000년 왕자의 난을 거쳐 자동차 부문의 정몽구 회장, 현대중공업그룹의 정몽준 회장과 계열 분리했다.
선대 회장의 유지를 이어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을 이어오다 지난 2003년 대북 로비자금 송금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후 그룹은 미망인이 된 부인 현정은이 회장으로 취임(2004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자녀로는 장녀 정지이, 차녀 정영이, 아들 정영선 셋이 있다. 장녀 정지이는 현재 현대그룹의 IT 계열사인 현대유앤아이(U&I)에서 전무로 재직 중이다.
(아주경제 김형욱·김병용·이정화 기자) nero@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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