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조치로 현대는 다음달부터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을 모두 갚아야 한다. 현재 채권단에서 파악하고 있는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현대의 여신 규모는 4000억~5000억원 정도다.
이로 인해 현대그룹은 신규 투자에 더 이상 나설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영 전략 전반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하다.
현대그룹 고위관계자는 "연초에 밝힌 현정의 회장의 경영 구상이 채권단의 제재로 인해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며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새로운 경영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그룹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피해는 상당할 것으로 업계에서는 내다보고 있다. 현대상선은 이번 조치로 유류비ㆍ용선료(배를 빌린 비용) 등 운용자금 마련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대상선과 비슷한 규모의 선대를 운용하고 있는 한진해운은 매달 2500억원 안팎의 운용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현대상선은 채권단의 신규신용공여 중단으로 선박금융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선박 발주도 어려운 상황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선사들은 2~3년 후의 호황을 대비해 현재 낮은 선가를 이용해 선박 발주에 나서고 있다"며 "현대상선은 채권단의 제재에 발이 묶여 선대 확장은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한 최근 해외 시장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프로젝트 수주시 보증 및 자금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대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최후의 보루인 '현대건설 인수'가 이번 조치로 더욱 힘들어졌다.
현대가 현대건설 인수전에 대비해 비축해 놓은 실탄은 현대상선이 보유한 현금 1조2158억원(3월말 기준)을 포함해 약 1조3000억원 규모다.
이는 전략적 투자자(SI)를 유치해 자금마련에 나선다고 해도 채권단이 보유한 현대건설의 지분가치(3조~4조원)에 못 미치는 자금 규모다.
그럼에도 현대는 지금까지 "주채권 은행을 변경하고 재무구조를 재평가 받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대상선이 올 상반기 시장의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거둬 재무구조개선의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환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이라는 기본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현대가 계속 버틸 경우 기존여신 회수에 돌입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한편 재계 일각에서는 현대와 채권단의 타협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대립이 격화될수록 양측의 피해가 겉잡을 수없이 커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현재 타협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한 뒤 채권단이 현대의 경영권을 보장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방안이다. 두산그룹이 지난해 채권단과 체결한 자율약정 역시 현대 측에서 선호하는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기존여신 회수라는 최후의 카드만 남은 채권단. 그룹의 사활을 걸고 버티기에 나선 현대. 분명한 것은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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