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가 27일 저녁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미국 금융개혁 조치가 우리 시장에 미치는 영향 및 시사점'을 주제로 개최한 건전증시포럼에서다.
이날 참가자들은 최근 미국의 금융개혁과 같은 수준의 '과도한' 규제는 지양하고 국내 금융시장이 더욱 활성화되는 방안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 국내 SIFI 지정 문제 신중해야
미국에서는 연결기준으로 자산규모가 500억달러(약 60조원) 이상의 은행지주회사를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회사(SIFI)', 즉 초대형 금융회사로 규정하고 이들에 대해 다른 금융기관보다 엄격한 자본적립 의무와 차입한도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SIFI가 도산할 경우를 대비해 빠르고 질서정연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계획을 사전에 준비하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규제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금융투자산업실장은 "미국의 기준을 따르면 국내 대형 은행그룹은 모두 SIFI에 해당하는데, 국내 SIFI는 사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과 규모 차이가 크다"며 "동일한 규제 부과하면 경쟁력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경덕 외환선물 대표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은 총부채상환비율(DTI), 담보인정비율(LTV), 개별 금융기관 정기검사 등을 도입해 미국 이상의 규제를 받고 있다"며 "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감독 당국의 밀착된 모니터링은 필요하겠지만, 새로운 규제장치 도입은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 볼커룰 도입 '시기상조'
미국의 볼커룰(Volcker Rule)은 은행 및 은행계열사들과 비은행 가운데 SIFI로 지정된 금융기관에 대해 자기자본매매, 헤지펀드, 사모주식펀드 등 고위험 증권업무를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있다.
볼커룰의 영향으로 이들 금융기관의 유동성 공급, 특히 모험자본(risk capital) 공급은 다소 위축될 수 있고 이에 따라 모험자본에 의존하는 혁신기업들의 자금 조달비용이 상승할 개연성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신보성 실장은 "모험자본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투자은행(IB) 육성 정책은 여전히 중요하다"며 "은행계열사가 아닌 순수 증권사만이 고위험 증권업무를 수행하려면 대형화가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경덕 대표는 "국내 은행이나 증권사가 아직 영세해서 은행계열사 은행과 순수 증권사를 구분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현 단계서는 적극적인 모험자본의 공급을 확대ㆍ장려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안수현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한국의 제도 설계가 전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가지 않으면 외국기관이나 투자자들이 위기 시 한국 금융상품을 가장 먼저 내던져질 가능성이 크다"며 "사전적 예방과 투명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가되, 국내에 맞는 범위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헤지펀드 규제보다는 활성화가 중요'
헤지펀드 활성화 방안에 대한 의견도 제시됐다.
신보성은 실장은 "헤지펀드는 자본시장 관련 사업을 활성화해 자본시장 저변을 확대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며 "헤지펀드의 부작용이 아닌 활성화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9년 4월 국내에도 적격투자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사모집합 투자기구(헤지펀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지만, 운용상의 과도한 제약으로 전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투자자문업자법상 '14인 이하 적격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자'에 대한 등록면제 조항을 삭제하고, 자산운용규모 등에 대해 보고하도록 하고,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적격 투자자 요건을 상향 조정하는 등의 헤지펀드 규제 조처를 하고 있다.
차입투자로 헤지펀드와 다른 금융권과의 연계가 커지면서 헤지펀드가 시스템 리스크의 중심점으로 작용하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 실장은 "일부 대형 헤지펀드에 의한 시장교란이나 과도한 차입에 의한 시스템리스크 문제를 사전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보고 의무 등은 강화할 필요가 있지만, 시장도 없는데 규제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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