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박병춘(44.덕성여대 교수)의 작품 속에는 지필묵 외에 여러 재료가 등장한다.
일명 '청테이프'로 불리는 천면테이프, 라면, 칠판, 비닐봉지, 고무까지 다양한 재료를 통해 '지필묵'으로 대변되는 동양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여행을 좋아하는 작가는 또 국내부터 외국까지 이곳저곳을 다니며 여러 곳의 산수를 보고 스케치를 한다.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다음 달 3일 시작하는 '산수컬렉션'전에서는 작가의 이런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여러 곳에서 스케치해 '모은' 산수풍경들이 온갖 재료를 통해 구현된다.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맨 먼저 거대한 폭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7m 높이의 천장에서 내리꽂듯이 쏟아져 내리는 폭포 줄기는 지난 1월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봤던 폭포에서 영감을 떠올려 흰색 천으로 만들었다.
폭포 뒤 벽에는 강원도 영월과 정선의 풍경을 그린 산수화를 병풍처럼 둘렀고 바닥에는 검은색 수조에 물을 채워 평면 속에 갇혀있던 수묵화를 입체로 구현해냈다.
지하 1층에서는 흔히 쓰는 검은 비닐봉지가 온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냥 아무렇게나 구겨서 던져놓은 것 같지만 구겨진 봉투들이 만들어내는 굴곡은 묘하게 산 능선의 모습을 닮았다.
시장에서 상인들이 뭉쳐서 버려놓은 검은 비닐봉지의 모습에서 힌트를 얻고 2006년 인도 여행 중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풍경을 드로잉해놓았던 것을 떠올려 완성한 '비닐산수'다.
위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산 정상에 올라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도 들고 비행기 속에서 작은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던 풍경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여행 중에 주워 모은 작은 돌 약 100개를 늘어놓은 '산수 채집' 작품도 재미있다. 채집지의 지명과 함께 전시된 여러 모양의 돌멩이에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낚시하는 사람, 폭포 등의 그림이 작게 그려져 있다.
칠판 위에 분필로 산수풍경을 그리고 그 옆에 소박하게 글을 덧붙인 '산수공부'는 그 자체로 설치작품이자 현대적인 '한국화'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의 다양한 시도가 한국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풍경 자체를 그리는 것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 하면 공간과 만나 새로운 것을 연출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한국화가 보수적이고 고루한 것이 아니라 공간과 만나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대중들이 많이 알게 됐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한국화가 세계화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연구할 겁니다."
전시는 12월3일까지. ☎02-736-4371.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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