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9월 미국 공화당의 조 윌슨 하원의원은 미국 의회에서 건강보험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연설하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
미 의회는 단지 이 말을 했다는 이유로 윌슨 의원에 대해 비난결의안을 채택했다.
미국의 조사기관 ‘아넨버그 공공센터’가 지난 9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 의회가 열린 2009~2010년 동안 이 같은 ‘무례한 행위’는 6건에 그쳤다.
여기서 ‘무례한 행위’는 정확한 근거 없이 상대 당이나 소속 의원을 비방 또는 모독하는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우리 국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몸싸움은 미국에서 조사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몸싸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우리 국회에서는 야당의 격렬한 반대 속에 여당의 기습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처리 됐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외신을 통해 세계 각국에 전해지면서 다시 한 번 우리 국회는 조롱의 대상이 됐다.
이 같은 국회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비판의 목소리는 꾸준히 있어왔고, 그에 따른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자정의 노력 역시 이어져왔다.
지난해 12월 국회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국회 폭력사태로 여론의 비난이 이어지자 한나라당 쇄신파 의원들로 구성된 22명은 ‘국회바로세우기모임’을 결성하고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할 경우 내년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그 일환이다.
이 모임에 속한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이 ‘한미 FTA 비준안 여야 합의 처리와 국회 폭력 추방’을 촉구하며 열흘 동안 단식투쟁을 벌이는 등 이들의 중재노력에도 결국 비준안 합의처리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비준안)처리 과정에서 과거 같은 몸싸움은 없었다(한나라당 남경필 의원)”“물리적 충돌은 없었으므로 ‘몸싸움시 불출마’선언과는 상관이 없다(한나라당 김성태 의원)”라며 벌써부터‘발 빼기’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한나라당의 의석수가 절대적으로 우세한 상황에서 대화와 타협보다는 결정적 순간에 (법안 처리를 위해)물리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문제”라며 “이 같은 구조 때문에 극단과 배제의 정치가 판을 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에서 소수당 의원이 다수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장시간 발언 등 합법적인 방법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제도인 ‘필리버스터’ 제도나 ‘국회에서의 폭력행위 등 방지에 대한 특별법’ 등이 포함된 ‘국회선진화법안’의 처리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러나 지난 6월 발의된 이 법안은 여야 의견차이로 6개월 째 국회 법제사법위에 계류 중이다.
이번 FTA 처리과정에서 최루탄이 등장하고 강행처리가 이뤄진 것에 대해 미(美) ‘뉴욕타임즈’는 “법안을 강행처리하기 위해 물리적 대치에 의존하는 한국 정당의 성향으로 봤을 때 폭력적인 충돌은 불가피했다”며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각 당은 이같은 충돌상황을 어떻게 하면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만들지에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여야 모두 자신들이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기존의 정당체제는 유지될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가운데 박원순이나 안철수가 등장한 것”이라며 “정치인들 스스로가 대화와 타협을 기본으로 하는 정당과 정치의 근본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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