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20년 기회의땅> 한중수교 20년을 읽는 10대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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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1-02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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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조용성 특파원) 8월이면 한중수교 20년을 맞는다. 역사의 전환점이 된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양국관계는 20년동안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다. 중국이 없었다면 우리의 도약이나 2008년 금융위기 조기탈출도 어려웠을 것이다. 중국 역시 한국의 자본주의 경험과 각종 기술 전수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번영이 쉽지않았다. 국경을 굳게 닫고 적대하던 한중관계가 20년만에 순망치한의 뗄레야뗄 수없는 긴밀한 상생관계로 변화해온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흘러간 수교 20주년은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현란한 변화를 가져왔다. 중국의 숨가쁜 부상은 우리 한반도의 운명앞에 또다시 거대한 격랑으로 다가오고 있다. 본지는 한국사회 전분야에 걸쳐 수교 20여년이 몰고온 변화를 회고하고 한중관계의 또다른 20년을 조망하는 '한중수교 20&20(회고 20년, 조망 20년)’ 시리즈를 전개한다. 한중 수교 20년 대기획 시리즈에 나서면서 우선 20년간 한중간에 발생한 변화의 흐름들을 10대 키워드로 짚어본다.


◆빅뱅-교역투자교류 모두 급팽창

우리나라의 대중투자는 수교 20년을 거치면서 건수로는 80배 증가했고, 금액으로는 160배가 늘었다. 수출은 50배, 교역량은 35배 폭증했다. 양국간의 교역통계 투자통계 수치들은 급팽창을 거듭하고 있다. 2010년 양국교역액은 1800억달러를 돌파했고, 2011년에는 2000억달러를 넘긴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미간의 교역액이 3853억달러고, 중일간의 규모가 2978억달러다. 미국과 일본의 경제규모를 감안할때 한중간의 교역량은 그야말로 놀라운 수치다. 투자액면에서도 중국은 우리나라의 최대 해외투자국에 올라있다. 그동안 우리의 대중국 투자액은 479억달러에 달한다. 인적교류 역시 급팽창했다. 1992년 4만명에 불과했던 방중 한국인은 2010년 100배이상 늘어난 408만명을 기록했다. 방한 중국인 역시 1992년 9만명에서 2010년 188만명으로 급증했다. 중국은 한국인의 최다 방문국이며 중국방문 외국인 중 한국인의 비중이 1위다. 재중 한국유학생 6만7000명, 재한 중국유학생 6만2000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동조화-GDP 환율 물가 함께 움직인다

우리나라의 경제는 중국경제에 동조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국 경제성장률과의 상관계수는 수교 20년동안 마이너스에서 출발해 0.94로 확대됐다. 상관계수가 -1이면 정반대로, 1이면 똑같이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1에 가까울수록 상관도가 높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GDP 증가율 상관계수 0.94는 한-미(0.83), 한-일(0.87), 한-EU(0.74)의 수치를 뛰어넘는다. 한중간의 산업생산 증가율 상관계수 역시 0.89였고 주가지수 상관관계는 0.89였다. 환율의 상관관계도 높다. 홍콩 금융감독국 따르면 위안화 절상에 따른 한국 원화의 상관계수는 0.76에 달한다. 또한 물가의 상관관계 역시 긴밀하다.

◆체급차이-경제규모면에서 현격한 차이

중국의 2010년 GDP는 5조7451억달러였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GDP는 9862억달러였다. GDP규모로 따질 때 중국은 우리의 6배에 달한다. 중국이 향후 연간 7%씩 성장한다면 2020년이면 GDP가 12조달러에 이를 것이다. 우리나라의 10년 후 GDP는 1조3000억달러선으로 예상되고 있다. 2010년 6배였던 경제규모는 10배가량으로 벌어지는 셈이다. 교역액, 외환보유고, 투자, 시장규모 면에서도 중국은 이미 한국과 체급을 달리한다. 교역액으로 따지면 중국은 1992년 한국을 따돌렸다. 2011년 한국은 교역액 1조달러를 돌파했지만 같은해 중국은 3조달러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해외직접투자 역시 한국은 2011년6월 337억달러 누계였지만 중국은 2011년10월 463억달러를 기록했다. 게다가 중국은 우리나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자국통화(런민비)의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체급차이는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엇박자-경제는 밀착, 정치는 "글쎄"

한중 양국관계는 1998년 협력적 동반자관계에서 2003년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로, 그리고 2008년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됐다. 경제교류는 이에 걸맞게 날이 갈수록 밀접해지고 있지만 정치적인 거리감은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북한과 미국을 사이에 두고서는 상당한 시각차가 존재하고 있다. 2010년 천안함•연평도사건으로 인해 한중간의 외교관계는 서로간의 입장차로 서먹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연평도사태 이후 추진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두고 중국측이 강하게 어필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김정일 사망이후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더욱 긴밀히하고 우리는 대북외교전에서 소외되는 모습이다. 경제관계에 비해 정치외교적으로는 아직도 갈길이 먼 상황이다.

◆위상역전-한국 배우려는 열기 시들

한중수교 초기만 하더라도 우리의 대중 투자안은 거의 무조건 통과되다시피 했다. 또한 한국의 공무원들은 중국에 출장나오면 중국 관료로부터 칙사대접을 받다시피 했다. 당시 중국은 외자유치에 목말라했으며 우리나라의 기술과 경험을 무척 중요시여겼다. 특히 공공부문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성공경험은 중국인들에게 무척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성장을 거듭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투자는 이제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으로 역전됐다. 또한 한중간의 기술력격차가 날이 갈수록 축소돼가고 있으며 한국 공무원들의 관리정책경험에 대한 매력도 역시 떨어지고 있다.

◆지방화-교류주체 중앙에서 지방으로

수교 초기 우리의 대중 교류 주체는 중국 국무원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해가면서 지방정부의 역할과 권한이 강화됐으며 이로 인해 한중간의 지방정부간의 교류가 확산됐다. 2010년 기준으로 한국의 221개 지방자치단체가 중국의 330개 지방정부와 총 484건의 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이중 자매결연은 183건이며 우호교류는 301건이다. 한국의 246개 지방자치단체중 219개(89%)가 중국의 지방정부와 교류를 하고 있다.기업들 역시 과거 중앙정부를 창구로 활용했다면 이제는 지방정부를 파트너로 삼아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한중교류를 경험해본 중국 지방정부 관리들이 현 국가 최고지도층을 형성한 점도 특기할 만 하다. 푸젠(福建)성등에서 관료생활을 한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 허난(河南)성등에서 공직생활을 한 리커창(李克强) 상무부총리 등이 모두 한국과 친숙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문화-양국 휩쓰는 한류, 한풍

경제교류에 못지않게 문화적인 교류도 활발해졌다. 중국에서 한류(韓流)가 확산된 데 이어 한풍(漢風, 중국문화)도 한국에서 친숙해지고 있다. 한류 드라마는 1993년 처음 소개됐으며 한국 대중음악 공연은 1999년 최초로 중국에서 개최됐다. 이후 많은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가 인터넷을 기반으로 중국의 젊은층에 퍼져나갔으며 K-팝의 열기는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한풍 역시 2000년 이후 우리나라 문화산업에 확산됐다. 중국영화, 중국도서, 중국음식, 중국의 공연을 비롯해 공자학원 등이 한국에서 인기몰이를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한중 합작드리마, 한중 합작 영화등이 제작되고 있어 향후 문화교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진입장벽-첨단기술 지녀야 환영받아

산업구조 고도화, 과잉투자조정 등 중국내 정책의 변화로 인해 대중투자에 나선 한국기업이 과감하게 첨단기술을 수반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과 LG의 8세대 LCD투자는 과잉투자우려로 2010년 11월 신청한지 9개월이 지나서야 중국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포스코도 당초 머뭇거리다 친환경 파이넥스공법 합작 제철소 설립에 합의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대신 과거 대중 투자 봇물을 이뤘던 임가공무역이나 노동집약적 사업체들은 현재 하나 둘 중국시장을 떠나고 있다.

◆내수-중국서 만들어 중국에 판다

중국이 내수중심으로의 경제구조 전환을 모색하면서 우리기업들의 진출업종과 패턴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과거 중국에서 만들어 해외시장에 수출했다면 이제는 중국에서 만들어 중국시장에 판매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두산인프라코어 CJ그룹 등이다. 아모레 퍼시픽, 웅진코웨이, 이랜드 등 내수업종도 현지에서 선전하고 있다. 현대차는 중서부개발 특수를 활용하기 위하여 내륙지역인 청두(成都)에 합작상용차 회사 설립중이고, 한국타이어도 내륙 충칭(重慶)에 3공장을 짓는다. SK그룹은 아세안과의 교두보인 광시(廣西)자치구와 석유화학 사업 등을 위한 포괄적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금융-산업에 비해 부진한 금융진출

산업부문에서의 우리기업의 진출에 비해 그동안 금융업체들의 중국진출 성과는 부진한 편이었다. 하지만 최근 2~3년간 금융회사들의 중국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은행법인전환, 양국증시의 상호투자 확대, 중국기업 한국상장 등 우리나라 금융업체들의 중국 현지화 노력도 급진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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