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상반기 채용시즌을 마무리하며 주요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들이 이른바 ‘스펙’이라고 불리는 학점, 토익점수 등의 기존 전형 요소보다 열정과 도전정신, 전문성, 창의성을 채용의 주요 요소로 반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1일 밝혔다. 또한, 사회의 다양한 계층을 위한 채용을 별도 마련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전경련이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취업 준비 또는 스펙을 쌓기 위해 대학을 4년 만에 정상적으로 졸업하지 못하는 구직자가 전체 59.4%에 달한 것도 달라진 채용 문화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들은 진흙 속 진주를 가려내기 위해 기존 서류, 필기시험, 면접이라는 형식에서 벗어나 오디션 형식으로 원하는 인재를 가려내는 파격적인 방식을 도입했다.
SK그룹의 ‘SK 바이킹 챌린지 예선 오디션’은 면접관 앞에서 구직자들은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설명한다. 지난달 열린 오디션에서는 10만원으로 세계 14개국을 106일 동안 무전여행한 지원자, 자신이 디자인한 시계로 1인 창업에 도전한 지원자 등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들이 대거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은 지난해 하반기 첫 오디션을 통해 40여 명을 채용했다.
KT도 올해부터 ‘올레 오디션’이라는 새로운 채용 방식을 도입해 자사가 주최한 ‘올레 잡페어’ 기간 중 실시했다. 지원자는 5분 동안 자유롭게 자기소개를 하고, 이를 통해 선발된 인원에게는 서류전형을 면제해주고 있다.
기존 서류전형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른바 ‘스펙’을 채우는 공간은 사라지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지원서류에 사진란과 부모님 주소, 제2외국어 구사능력, 고교 전공 표시란 등을 삭제하고, 얼굴이 가려진 상태에서 모의 면접을 보는 ‘5분 자기 PR’을 온라인 화상 면접으로 확대했다.
전공·학력에 따른 채용 부문간 벽도 무너뜨려 ‘융합형 인재’ 양성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그룹은 올 상반기 공채부터 인문계 전공자를 소프트웨어 직무로 특별 채용하는 ‘삼성 컨버전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CSA)’ 전형을 한다.
롯데그룹은 그룹공채에서 ‘대졸 공채’라는 명칭을 ‘에이 그레이드(A-Grade) 신입사원 공채’로 변경하면서 대졸 학력 제한을 폐지해 고졸 이상 학력자는 신입사원 공채에 지원이 가능하다. 한화그룹은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인적성 검사를 폐지해 채용 전형기간을 2.5개월에서 1.5개월로 줄였으며, GS그룹은 각 계열사별로 특화된 채용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포스코는 인턴 채용에 ‘탈스펙 전형’을 신설하고, 지원 서류에 학력, 출신교, 학점, 사진 기재란을 삭제했다. 도전정신, 창의성, 글로벌 경험 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스토리를 자유롭게 기술한 에세이를 제출토록 해 열정과 잠재역량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한다.
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기초기술을 갖춘 우수인재를 미리 확보하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도 활발하다. 현대차는 향후 10년간 마이스터고 2학년생을 대상으로 총 1000여명의 우수인재를 미리 선발하며, 두산그룹은 마이스터고·특성화고 등과 연계해 두산반을 운영하고 있다.
고졸·여성·지방대·장애인 등을 사회의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채용 확대 및 우대하는 프로그램 등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그룹은 ‘함께 가는 열린채용’을 모토로 3급 신입사원 공채에서 지방대생은 35%, 저소득층은 5%까지 채용을 확대하여 실시하고 있으며, 일반 공채 이외에도 3급 고졸공채를 신설해 고졸자 취업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SK그룹은 지난해 SK텔레콤에서 시범 실시한 지방대생 채용을 올해는 전 계열사로 확대, 대졸 채용 인원인 4300여명 중 30% 이상을 지방대생으로 뽑을 계획이다.
LG그룹은 지방대·전문대 출신 우수인재 확보를 위해 교수 추천, 지방대 현장 순회 채용, 공모전 및 경진대회 출신 실무역량 보유자 우선 채용 등을 도입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고졸대상 공채를 실시하고, 고등학교 2학년 대상 채용 전제형 인턴제도도 실시하고 있다. 특히 고졸 채용자를 위해 기업대학을 운영하고, 5년간 일정 수준 성과를 내는 직원에 대해서는 대졸 직원과 같은 직무 전환과 승격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이용우 전경련 사회본부장은 “이번 조사 결과는 열정과 잠재력을 가진 능력중심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기업들의 채용 문화에 변화가 있음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 본부장은 “기업들은 다양한 계층을 배려한 채용과정을 통해 새로운 채용문화 정착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며 “구직자들도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이고, 천편일률적 스펙 쌓기보다 자신만의 장점과 열정을 스토리화함으로써 장점을 부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