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홍성환 기자= "음식점 가격이 그 식당의 품질을 보증하듯이 병원의 진료비가 치료의 질을 결정합니다. 진료수가 현실화 없이는 보건산업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회장은 23일 '대한민국 의료현황과 건강보험제도 개선방향 제안'을 주제로 한 오찬 강연에서 "비현실적인 진료수가를 합리적으로 올려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노 회장은 "우리나라 평균 의료비 지출은 1879달러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인 3233달러보다 적지만, 되레 외래진료와 입원 횟수는 OECD의 2배에 달한다"며 "이는 진료비가 매우 싸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인력이 OECD 평균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한 것도 비현실적인 진료비 탓"이라며 "적은 의료 인력에게는 너무나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문제의 원인은 정부의 낮은 의료비 부담을 꼽았다.
노 회장은 "우리 정부의 의료비 부담률은 2009년 기준 전체 의료비의 58% 수준"이며 "이는 멕시코나 칠레를 겨우 웃도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더불어 "오히려 정부는 내야할 지원금조차 내지 않고 있다"며 "의료비 현실화를 위해서는 정부가 의료비 재원을 더 투자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과도한 의료비 통제로 인한 부작용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밝혔다.
노 회장은 "저수가 정책이 의사의 불필요한 진료를 늘리고 필수 진료를 늘어나게 하는 등 의료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며 "동네 의원급 1차 의료 기관을 붕괴시키고 있다"고 쓴소리는 내뱉었다.
그는 "원가 이하로 책정된 낮은 진료수가가 동네의원의 경영을 더욱 악화시켰다"면서 "결국 규모의 경제를 갖춘 대형병원들만이 살아남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비현실적인 진료수가를 합리적으로 올리고 불필요한 외래진료와 입원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개인부담은 줄이고 정부 부담을 늘리는 것이 의료의 질을 높이고 보건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길"이며 "한계에 다다른 건강보험제도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고 조언했다.
약업·의료계의 협력의 중요성도 밝혔다.
노 회장은 "그동안 제약사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스스로 무슨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며 "국내 제약사들이 정부의 우산 아래, 온실 속 화초처럼 안주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 세계 제약시장에서 일본이 12%를 차지하는 반면 우리나라의 비중은 1% 남짓에 불과한데 양국간 인구 차이를 감안해도 국내 제약시장 규모는 매우 적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9년 한 해 동안 글로벌 제약사들이 600~900건의 대형 인수합병(M&A)를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나라 제약업계에서 이같은 대형 인수·합병(M&A)이 일어나지 않는 것 역시 온실 속 성장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노 회장은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제약기업들이 절박한 위기의식 가져야 한다"면서 "제약사 단독으로 산업을 키우기 어렵다면 의료계와 끊임없는 교류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쓰는 약은 제약사가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의사들은 제약사의 힘을 빌려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라며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규제완화와 보건의료 산업의 진작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는 의료 산업분야의 경쟁력 회복시키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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