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인터뷰> 김윤석 “좋은 영화는 가장 명석한 두뇌로 하는 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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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10-10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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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는 블랙커피, 쓴맛의 여운에 목마른 관객께 드리고파”

[사진=남궁진웅 기자]
아주경제 홍종선 기자= 영화 <화이>가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9일 하루 36만명이 <화이>를 찾았다. 2위는 이준익 감독의 <소원>, 3위 유아인 주연의 <깡철이>과 4위 송강호 이정재 주연의 <관상>까지 모두 한국영화다.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친 힘의 원천은 <추격자> 이후 오랜만에 나온, 타협 없이 ‘갈 데까지 가 본’ 한국형 스릴러에 대한 반김이다.

장준환 감독이 기존의 천재적 개성을 감추고 정통 드라마를 연출한 것도, 열일곱 어린 나이(촬영할 당시에는 16세)에 놀라운 폭발력을 보여 주는 여진구의 분발도 인상적이지만 그래도 <화이>는 배우 김윤석의 영화라 말하고 싶다.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의 결과라고 평할 수도 있겠지만, 김윤석이 주연을 맡은 영화들은 하나의 ‘결’을 지닌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거북이 달린다> <완득이> <남쪽으로 튀어>처럼 캐릭터들은 김윤석이 맡은 배역 주위로 차지게 뭉쳐 있고 영화는 김윤석 풍으로 마감됐다.

개봉에 앞서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김윤석은 “김윤석이 출연한 영화를 보면 김윤석이 보이는 게 아니라 작품이 보인다”는 말에는 동의하면서도 ‘김윤석 풍’이라는 말에는 손사래를 쳤다.

“아유, 그런 위험한 얘기 하지 마세요. <화이>를 들어 말씀드리자면 장 감독이나 배우들, 저뿐 아니라 진구, 장현성, 조진웅, 박해준, 김성균까지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서로 생각이 맞았기 때문에 뭔가 하나의 결로 정리된 느낌을 받았을 거예요.”

“아버지 5명이 모두 연극배우 출신이에요. 만나자마자 계보 정리했고(웃음) 저부터, 현성이, 진웅이, 해준이, 성균이까지 말씀 드린 순서대로 형, 동생이 됐죠. 5명이 연극배우 출신이라는 게 이번에 외적으로 큰 힘이 됐어요. 진구를 중심에 놓고, 아들이 아니라 막내 동생을 보호하듯 장 감독과 똘똘 뭉쳐 촬영했어요. 장 감독부터 진구까지 뜨거운 형제애를 느끼며 함께했습니다.”

흔히 영화는 망해도 배우는 남는다고 말한다. 제 몫의 연기만 제대로 해 내면 비록 영화가 흥행에 실패해도, 배우에게는 캐스팅이 이어지고 성공의 발판으로 작용한다. 혹은 연출력 부족으로 영화의 매무새는 헐겁지만 배우는 빛나는 영화들을 종종 만난다.

“일단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제가 돋보이고 제가 남는 게 중요한 게 아니죠. 배우는 또 영화는 일종의 서비스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다음이 아니라 이번에, 지불하신 표 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어요. 그 정신을 놓치면 안 돼요. 보여 주기 위한 ‘공동작업’이라는 ‘윤리’를 반드시 지켜야 해요. 당연히 작품이 우선이고, 또 영화가 전부입니다.”

이 남자, 말도 참 차지게 한다. 짧지 않은 말에도 군더더기가 없다. 그가 보여 주는 연기와 닮았다. 서릿발 같이 차갑고 냉정하게 절제된 감정 속에 인간에 대한 애정과 따뜻한 눈빛이 배어 있다. <화이> 속 윤석태도 그렇다.

“시사회 등을 통해서도 드린 말씀이지만 화이가 나를 이겨야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괴물을 삼켜 괴물에 머물렀지만 화이는 괴물을 삼키고 그 괴물을 이겨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 거예요. 그 바람의 절실함만큼 더 냉혹한 거고요”라고 서늘하게 말하는 눈 속에 부성애(父性愛)의 온기가 담겼다.

[사진=남궁진웅 기자]
배우 김윤석의 석태 이야기는 계속됐다.

“인간의 사적 탐욕이 끝까지 가면 뭐가 남을까에 대해 생각했어요. 선과 악. 극단은 통한다고 하죠, 순수 악은 끔찍한 사랑으로 전환된다고 봤어요. 악 속에 선이 숨어 있다, 날 선 무엇 속에 보이는 따뜻함, 보여 주지 않으려는데 보이는… (따뜻함). 석태가 보여 주는 고결함과 여유, 내가 하는 일인 순결하다는 생각에서 오는 고결한 기품의 배경입니다.”

무섭도록 배역에 빠져들어 하나의 캐릭터를 구축하고선, 영화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와 마치 다른 사람이 연기한 캐릭터를 분석하듯 말하는 김윤석. 영화에 깊이 몸 담그고 있는 뼛속까지 영화인인 그에게 ‘좋은 영화’란 무엇인지가 묻고 싶어졌다. 그것과 그것이 만들어지는 곳을 너무 잘 알 되 제3자적 시각으로 얘기해 줄 수 있는 적임자라는 생각에서.

“집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집요하게 정성을 들여 만들어야 해요. 노력 앞에 장사 없다고 하잖아요. 길을 잃지 않고 끝까지 가다 보면 좋은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이든 배우든 예술적 허영이 아니라 가정 명석한 두뇌로 ‘노가다’(육체노동)을 해야 영화다운 영화가 나옵니다.”

냉철한 두뇌와 육체의 뜨거운 노동의 결합으로 좋은 영화를 설명하는 그에게 얄궂지만 <화이>는 좋은 영화인지 물었다.

“정서적으로 성인영화죠.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있는 시나리오에 정공법으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캐릭터. 오랜만에 상징적으로 우화적으로, 그러나 촌스럽지 않게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에 배우들의 힘이 보태진 정통 영화입니다. 그 결합을 이뤄낸 건 감독의 연출력이고요.”

한 번 더 짓궂게, 관객들이 이 정공법의 정통 드라마 <화이>를 좋아할지 물었다.

“좋아하실 거라고 봅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관객들의 수준은 높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깊은 한숨을 짓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달콤한 스파게티도 좋지만 때로 블랙커피처럼 쓰지만 오랜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이 가을에 잘 어울리지 않나요. 장 감독의 바람이 이렇게 보고 저렇게 따져 봐도, 몇 번을 봐도 할 얘기가 있는 여운이 있는 영화로 관객들이 받아들여 주시는 거예요. 저는 요즘 관객들께서 쓴맛의 여운에 목말라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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