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노승길 기자 = "한국, 디플레이션 공포 확산", "디플레이션에 발 담근 한국경제", "한국경제, 디플레이션 째깍 째깍"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자고 일어나니 물가가 올라 있다"란 농담이 있을 정도였지만 최근 소비자물가상승률 발표 때마다 나온 말은 이처럼 달라졌다.
세계 경제가 경기침체 속 물가가 지속해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공포에 빠져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역시 저물가 기조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2011년 4.0%에 달하던 물가상승률은 2012년 2.2%, 2013∼2014년 1.3%로 갈수록 떨어져 어느새 0%대다.
물가가 계속 떨어지면 사람들은 소비를 최대한 늦추게 마련이다. 늦게 살수록 더 유리하다는 인식이 머릿속에 자리 잡기 때문이다.
제품이 잘 안 팔리니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을 줄이게 되고, 고용 축소는 가계 소득 감소로 이어져 소비 여력은 더 줄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경제는 장기 침체에 빠지고 물가는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것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시작이다.
일본의 장기 불황은 1980년대 말 대규모의 자산 버블이 원인이 됐다. 9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 버블이 붕괴되기 시작했고, 일본 경제는 장기간의 디플레이션에 빠졌다.
90년대 중반 일본 정부는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고,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0%대까지 끌어내려 경기를 살리려고 했지만 아무리 돈을 풀어도 경제 주체들이 경기 상황을 어둡다고 판단, 소비나 투자를 하지 않고 현금을 쌓아두기만 했다.
최근 한국 경제가 딱 이 모습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6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1.5%로 내렸고, 정부도 추가 경정예산을 편성하는 등 시중에 돈을 풀었지만 소비와 투자 침체는 뚜렷한 개선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에 정부도 위기감을 느끼고 디플레와의 전쟁에 나섰다.
정부는 올해부터 그간 각종 정책의 기준으로 삼았던 실질성장률에 더해 경상성장률을 경제성장의 기준 지표로 삼았다. 경상성장률은 물가 수준을 반영한 성장률이다.
정부의 올해 경상성장률 목표는 4.5%다.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3.1% 증가하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5%가 되면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저물가 잡기'에 나섬에 따라 단기적으로 경기 회복과 함께 물가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저성장·저물가 기조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저물가 탈피를 위해 정부도 노력해야겠지만 한국은행이 완화적인 통화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며 "다른 나라 통화 정책 상황을 보면서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관계자는 "금리인하와 재정 집행 등 단기적인 대책보다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대한 대책과 가계 소득 증대를 위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라며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대책만으로는 과거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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