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에서 '부자증세'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재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신규 채용 확대에 더해 법적 정의가 없는 ‘초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인상과 초고소득층에 대한 증세는 사실상 대기업 총수 일가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4대 그룹 관계자는 23일 “정부 정책의 큰틀에 공감하고 적극 지원하겠다는게 재계의 입장"이라며 "다만 증세 대상에 대기업·총수들만 주로 포함돼 있어 마치 재계가 세수정책의 왜곡을 불러일으킨 주범이라는 식으로 몰린 것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장기적 관점에서 제도를 개선하기보다 단기적인 시각에서 접근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푸념했다.
◆韓, 법인세 3%p 인상시 자본 유출 6.75% 증가·유입 4.1% 감소
현재 한국은 최고세율을 기준으로 △2억원 이하는 10% △2억~200억원은 20% △200억원 초과 22% 등 3단계 과표 구간을 두고 법인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는 2000억원 초과기업에 대해 법인세 25%를 적용하자며, 이들을 ‘초대기업’으로 제안했다.
‘초대기업’ 과표 구간이 신설되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 제조업·금융업종별 1~2위 기업 116개사가 적용되며, 이들이 추가로 내야 할 세금은 3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감면대상 세금 축소분까지 더할 경우 4조원대로 늘어난다.
이에 대해 대기업들은 “법인세율이 인상돼 추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 규모는 국내에 사업장을 새로 만들거나 유지할 수 있는 정도”라며 “여기에 일자리 창출 등 정부의 정책기조 분담까지 더해지면 부담은 훨씬 커진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법인세 인상으로 정부가 말한 경제의 선순환 구조의 강화에는 크게 기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법인세 인상으로 정부의 세수입 증대 효과가 적을 뿐만 아니라 결국 현 정부가 중요하게 여기는 노동자들의 세 부담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인세가 인상되면 국내에서 생산되는 재화 가격이 상승해 수입재화로 수요가 대체되는 사례가 늘어나 국내 생산재 수요가 감소하고 자본의 해외유출 증가로 노동자들의 세 부담이 증가한다는 설명이다.
조 실장은 “디지털 경제의 발전으로 법인세율 격차에 따른 자본 유출·유입이 갈수록 민감해 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법인세율을 인상할 경우 자본 유출 가능성이 다른 나라에 비해 크다”고 강조했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정부가 법인세율을 3%p 인상할 경우 자본 유출은 6.75% 증가하고 유입은 4.1% 감소한다. 2015년 한국의 외국인투자유치(FDAI) 실적을 기준으로 이를 적용할 경우 자본 유출은 21조3000억원 늘어나고, 유입은 8조800억원 감소한다.
초대기업을 대상으로 법인세율을 인상해 추가로 얻는 세수입보다 최소 10배 가까운 국내 산업 자본이 감소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될 경우 기업활동이 위축돼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법인세 인상 “오히려 1.3%p 인하 여력 존재”
재계는 국제간 세율격차를 줄여 자본의 이탈을 방지하려는 조세경쟁의 결과, 세계 각국은 법인세율을 지속적으로 낮추고 있다면서, 우리 정부도 법인세 인하를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경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및 아시아 국가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경제·사회·정치 환경을 비교해 봤을 때 한국은 정상수준보다 법인세율이 1.3%p 높은 수준이다. 이를 인하해야 외국과 경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요 국가들은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세계적으로 명목 최고세율과 법인세 부담률이 오히려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정부지출 규모가 증가하더라도 법인세 부담률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집권 공화당이 최근 현 35%인 법인세율을 20% 내외로 낮추는 방안을 내놓았으며, 프랑스는 현재 33.3%인 법인세율을 오는 2020년까지 28%로 낮추기로 한 데 이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5%로 추가 인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영국도 2008년 30%이던 법인세율을 20%로 무려 10%포인트 인하했으며 2020년까지 다시 17%로 낮출 방침이며, 중국도 2008년 33%에서 25%로, 일본은 2012년 40.69%에서 38.01%로 내린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네 차례에 걸쳐 세율을 30.86%로 낮췄다.
◆중소기업 ‘피터팬 증후근’ 심화 우려
이번 법인세 인상 대상에서 중소기업은 제외된데 대해 경제계는 중소기업의 안주의식을 키우고 더 나아가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짚었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기업 규모에 따라 누진구조를 강화하려는 배경에는 중소기업의 주주는 가난하고 대기업의 주주는 부자라는 잘못된 인식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중소기업일수록 대주주의 지분율이 높고 소액주주의 지분율이 낮기 때문에 누진구조를 강화할수록 소득재분배는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기업의 경우 대주주의 지분율은 약 20% 수준인 반면, 비상장주식회사의 대주주 지분율은 100%에 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이 ‘피터팬 증후군’에 빠진 것도 대기업·중견기업들에 집중된 규제 때문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그만큼 혜택이 많다는 것”이라면서 “현 재벌 규제 조치는 반재벌 정서와 더불어 중소기업의 머물기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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