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착 상태가 장기화 되고 있는 북·미 협상은 불가항력적인 요인이라고 치더라도 북한이 우리를 향해 대놓고 비난을 퍼붓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당초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과 6·25전쟁 70주년을 매개로 남북 관계 진전을 모색한다는 계획이었지만, 북한 측의 돌발 행동으로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시작은 대북전단 살포 문제였다. 북한은 이어 판문점 선언의 파기 가능성까지 경고하더니 문 대통령의 남북 구상을 ‘달나라타령’이라고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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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그 중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있다는 점이다. 당초 남북 정상회담 국면에서 우리 국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줬던 김 제1부부장은 최근 자신이 ‘대남사업 총괄’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이후 대남 강경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다.
급기야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전화통화 마저 한때 거부하며, 남북 관계가 최악의 상태로 치달았다.
◆북, 연락사무소 남측 통화 한때 거부…‘김여정 말하는대로’
북한이 8일 오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업무 개시를 위한 남측의 전화통화를 받지 않았다. 오후에 응답하기는 했으나, 2018년 9월 남북연락사무소 개소 이후 북측이 남측이 통화연결 시도를 거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오늘 오전 연락사무소는 예정대로 북한과 통화 연결을 시도했으나 현재 북측이 받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통상 연락사무소는 특별한 현안이 없더라도 평일 오전 9시와 오후 5시 두 차례에 걸쳐 업무 개시와 마감 통화가 이뤄져 왔다.
김 제1부부장은 지난 4일 발표한 담화에서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남측의 조치를 요구하며 금강산 관광 폐지, 개성공단 완전 철거,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와 함께 연락사무소 폐쇄를 언급했다.
이어 5일 밤 북한 통일전선부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김 제1부부장이 연락사무소의 ‘완전한 폐쇄’ 등 조치를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대남사업 총괄’하는 ‘2인자’ 김여정
북한은 김 제1부부장이 언급한대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수순에 돌입한 모양새다. 이는 김 제1부부장의 영향력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북한 당국이 제1부부장에 대해 “대남사업을 총괄한다”고 처음으로 공식 확인한 바 있다.
김여정은 지난 3월에도 청와대 비난 담화를 내 관련설이 떠돌았지만, 북한 당국이 이를 확인해준 것이다. 현재까지 김 제1부부장의 소속 부서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에게나 붙여졌을 ‘지시’라는 단어도 김 제1부부장에게 사용됐다. 김 제1부부장이 대남 공작기구인 통전부와 국무위원회 직속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물론, 군부에도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지휘봉을 쥐고 있다는 의미다. 기존에도 여러 차례 드러났지만 명실공히 ‘북한 2인자’로 입지를 굳혔다는 평가다.
지난해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열차로 이동한 김 위원장의 담배 재떨이를 들고 서 있는 사진이 찍히는 등 김 위원장 ‘의전 전담’으로 각인된 김 제1부부장은 지난해 말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에서 당 제1부부장으로, 올 4월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복귀한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6일 평양에서 열린 ‘청년학생 항의군중집회’에선 김 제1부부장이 4일 발표한 담화가 낭독됐으며 노동신문은 6, 7일 이틀에 걸쳐 1면을 포함해 각 2개면과 3개면에 김여정의 4일 담화에 대한 ‘각계 반향’을 실었다.
북한 공식 선전매체인 노동신문이 북한 최고지도자가 아닌 인물의 담화를 최고지도자의 교시처럼 인용해 반향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 역시 전례 없는 일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최근 김여정의 잇따른 도발은 내부 결속용으로 보인다”면서 “내부 결속만 다져진다면 우리 사정에 밝은 편인 그와 오히려 대화는 더 잘 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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