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가수로 데뷔해 또래처럼 보편적 경험을 해보지 못한 자신이 '요즘 청춘'을 연기하는 게 부담이기도 했다지만 그의 필모그래피처럼 한승연도 '요즘 청춘'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 역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해온 '요즘 청춘'이기 때문이다.
한승연의 영화 데뷔작 '쇼미더고스트'(감독 김은경)는 코미디·공포 등 장르적 색채가 강하지만 어떤 작품보다 현실적인 청춘들의 고민을 담아낸 작품이다. 집에 귀신이 들린 것을 알게 된 이십년지기 예지(한승연 분)와 호두(김현목 분)가 귀신보다 무서운 서울 물가에 맞서 귀신 퇴치에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취업난, 전세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 등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
아주경제는 영화 '쇼미더머니' 개봉 전 주연 배우 한승연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드라마 '청춘시대' '열두밤' 영화 '쇼미더고스트' 등을 통해 차근차근 청춘의 삶에 다가가고 그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한승연의 진솔한 생각 등을 나눌 수 있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나눈 한승연의 일문일답
- 부모님께서 정말 좋아하셨고 저도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다(웃음). 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시청자에게) 많이 혼나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언급되며 칭찬을 받으니 감격이다.
부천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했는데
- 시사회 전날에는 잠도 안 오고 배까지 아프더라. 영화 출연은 처음이라 이렇게 큰 화면으로 제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많이 긴장했었는데 영화를 같이 본 분들이 우리가 의도한 부분에서 웃으시고 즐거워해 주셔서 긴장을 덜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더라. 실은 우리 영화가 부천국제영화제에서 2회 상영되었는데 예정에 없이 몰래 상영관을 찾아갔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감독님과 다른 배우들도 저처럼 몰래 찾아갔었다고 하더라.
한승연이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많이 회자하는 건 '청춘시대' 예은과 '쇼미더고스트' 예지 같다. 가장 현실적인 청춘들이기도 했고
- 두 캐릭터 모두 저와 닮은 데가 있다. 그래서 공감할 수 있었고 억지로 감정을 짜내거나 다른 데서 끌어올 필요 없었다. 예은이는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모습이 저와 닮았다. 아이돌 가수 활동하던 시절 모습이 많이 묻어났다. 그때 느낀 감정이나 행동 같은 것들을 (캐릭터에서) 볼 수 있다고 할까? 반면 예지는 일상적인 제 모습과 닮았다. 오지랖은 넓고 수다스럽지만 상냥하지 못한 면들이다. 상대가 걱정되는데 무뚝뚝하게 한마디씩 툭툭 하게 된다. 그런 면들이 저와 닿아있어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던 거 같다.
예지는 요즘 세대가 겪는 어려움이나 고민을 그대로 담아낸 캐릭터다. 한승연이 이 인물에게서 가장 공감했던 건 무엇인가?
- 면접에서 떨어진 예지가 '나는 안 돼, 내가 될 리 없어'하고 울어버리는 장면이 있다. 코믹하게 그려졌지만, 예지가 느끼는 감정은 절망에 가깝다. 크게 공감할 수 있었던 신이었다. '내게는 어떤 미래가 있을까?' 두려운 마음과 절망은 저도 익히 알고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었다. 대사를 입 밖으로 내는 것만으로도 슬픔이 몰려왔다.
또 영화 후반에는 내가 도와줄 수 없어서 답답하고 스스로 바보 같다고 느끼는 장면이 있는데 이 마음도 공감할 수 있었다. 사회적 문제를 바라볼 때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보지 않았을까. 유기견 봉사 활동을 할 때 많이 느껴보았다. 모두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데 그게 현실적으로 잘 안 될 때. 답답하기도 하고 무력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래서 예지가 실마리를 가지고 범인을 추적할 때 더욱 쾌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글(대본)로 보았을 때와 영상으로 구현되었을 때의 느낌이 달라지곤 하는데. 한승연의 예상을 벗어난 장면들이 있을까?
- 감독님이 생각보다 공포에 진심이셨다(웃음). 대본을 읽었을 때는 공포가 그렇게 진할 거라 여기지 않았다.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있지 않았다.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 귀신의 외모가 정말 무서웠고 연출적으로도 정말 오싹하더라. (김은경 감독은 공포 영화 '어느 날 갑자기'로 데뷔했다) 오히려 공포 장면들이 너무 무섭다고 수위를 조절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공포와 코미디 그리고 청춘물을 한 작품에서 다룬다는 건 배우로서도 진귀한 경험일 거 같다
- 최근에는 코미디와 공포 그리고 청춘의 고민 등을 한꺼번에 다루는 작품이 많이 없었던 거 같다. 이 작품을 하면서 리듬감을 익히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호흡의 박자라거나 상대 배우와 티키타카 할 때의 리듬 등이 달라서 복합적인 장르를 통해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호두 역을 맡은 김현목 배우와 호흡도 인상 깊었다
- 우리 영화의 코미디 지분은 현목 씨가 가지고 있다. 저는 잘 받아 치면 되는 역할이었다. 호두는 재미있는 상황을 유쾌하게 만들고 환기하는 역할이었는데 현목 씨가 그런 쓰임에 맞게 입체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연기했던 거 같다. 함께 연기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자신의 필모그래피(작품 목록)를 돌아보면 어떤가
- 어릴 때 경험하지 못한 일이나 삶의 무게 등을 연기하면서 알게 되는 거 같다. 그 시기를 돌려받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전에는 회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봐도 공감하기가 힘들었다. 직장 상사나 동료를 가져 본 적이 없었으니까. 연기하고 그들의 삶을 살아내면서 가져보지 못한 삶을 선물 받는 느낌이 든다. 인간적으로도 깊어지고 시야가 넓어진 거 같다. 앞으로도 차근차근 청춘으로 살아가다 보면 더 많은 삶을 경험해볼 수 있지 않을까?
예지 역시 한승연의 성장에 일조했을까?
- 그렇다. '취업 때문에 괴로운 건 어떤 마음일까?' '어린 시절을 함께한 친구와 끈끈한 우정을 나누는 건 어떤 일일까?' 궁금했었다. 이 작품을 하고 예지로 지내면서 감정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결국 나의 선택은 옳았다(웃음).
한승연 역시 치열한 시기를 보내왔다. 그룹 카라로 데뷔했을 당시에도 마냥 '꽃길'은 아니었던 거로 기억한다. 어려운 시기를 거쳐 한류 가수로 정점을 찍었는데. 배우로도 차근차근 나아가는 느낌이다. 배우로 성취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 저는 항상 '데뷔'하는 입장이었다. 제 이름을 검색해보면 '가수 데뷔' '재데뷔' '일본 데뷔' '연기 데뷔' 하는 식이다. 한때는 '나는 왜 항상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나' 하는 의문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지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꾸역꾸역 차근차근 걸어온 게 결국 저의 재산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정신적으로 무너질 때도 금방 제 자리를 찾아가는 힘이 생긴 거 같다. '대단하다'라는 평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행복하게 일할 수 있으면 좋은 일 같다. 바쁘게 일하고 인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는 않았다. 연기하면서 오히려 조바심도 사라지고 길게 내다 볼 줄 알게 되었다. 한승연의 삶도 살면서 문제없이, 사고 없이 좋은 작품을 보여드리는 게 제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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