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를 발표했다. 2018년 이후 미국의 인도태평양(‘인태’) 지역에 관한 두 번째 전략보고서였다. 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향후 1~2년 동안 미국의 행동계획 10개 사항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한·미·일의 협력 확대가 포함되어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차기 정부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였다. 어떠한 정부가 들어와도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인태지역의 판세 흐름을 보면 우리의 참여는 불가피한 사실로 발전하고 있다. 때문에 이참에 ‘인싸’가 되는 것은 우리 국익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적 경쟁이 심화되면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전략 가치는 상종가를 치고 있다. 미·중 양국 모두 한반도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간절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태지역에서 한반도는 미국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전략자산이다. 한·미동맹을 비롯해 경제안보 측면에서도 한반도의 중요한 가치는 작년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발표한 공동성명문에서 여지없이 나타났다.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을 꾀하는 미국에게 우리의 과학기술 경쟁력은 하나의 관건적인 요소다. 공동성명문에서 강조했듯 반도체, 수소에너지, 바이오기술, 이차전지, 소형원자로(SMR) 등에서 우리의 기술과 능력은 일본을 능가할 정도로 독보적이다.
군사안보적인 측면에서 주한미군기지는 단단히 한몫 한다. 특히 주한미군공군기지가 대만에서 제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주한미군 공군 전투기가 가장 먼저 출격될 가능성이 높다. 주한미군 공군기지에서 대만까지의 직선거리는 800해리, 일본 아오모리 현의 주일미군 미사와 공군기지와는 1400해리, 괌과는 1500 해리다. 박근혜 정부 때 우리나라가 공중급유주유기를 3대 도입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평시 비행에 전투기의 비행거리 능력은 500해리다. 따라서 유사시 한반도에서 출격하는 전투기는 도중에 공중급유가 필요하다.
이밖에 일본은 인태지역에서 유사시에 미국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다. 지난 2015년 미·일 간에 '가이드라인'이 수정되면서 일본 자위대의 활동 반경이 대만해협 근처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일본 '평화헌법' 등의 제약 요소를 차치하더라도 일본 자위대의 병력 규모나 무기체계는 우리 군과 비교해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본 자위대는 우리 군의 약 절반 수준(25만명)이고 전투 병력도 현저히 적다. 미국 인태전략의 핵심국인 호주의 병력 규모 역시 우리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미국이 50년대에 결성한 동남아조직기구(SEATO)에서 호주는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동아시아지역 전략에 적극 나섰다. 하지만 지리적인 위치에서부터 군사적 능력 등의 원인으로 미국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나라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에게 한반도의 지정학적 전략 가치는 지대하다. 러시아와 몽골 다음으로 가장 긴 국경을 우리 한반도(북한)와 맞대고 있다. 또한 미국의 동맹국 중 지리적으로도 제일 가까운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이남의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의 존재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미국이 2019년에 '중거리 핵전력 협정(INF)'을 폐기하고, 2021년에 우리나라의 미사일 사거리 지침을 해제한 것은 중국 국방과 안보에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미사일 사거리 지침 해제는 우리의 미사일 사거리에 대한 제한을 해제한 것만이 아니다. 주한미군기지에 배치될 미사일에도 적용된다. 지금까지 이러한 제한 때문에 주한미군기지에 패트리엇 미사일만 공식적으로 배치되었다. 그래서 중국은 우리의 인태전략과 쿼드에 대한 입장을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우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전략은 두 가지뿐이다. 제재 또는 유화책이다.
지정학적 전략이나 경제안보적인 측면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가치는 상당하다. 미국과 중국은 자신의 전략과 국익을 위해 우리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차기 정부는 우리의 국익을 위한 시대적, 전략적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미·중 간의 전략경쟁에서 이들의 지정학적 전략 구상도 읽어내야 한다. 중국은 인태전략을 자신에 대한 군사안보적 포위망으로 간주한다. 반면 미국은 이를 중국의 부상과 중국 공산당의 대외적 행위를 교정할 수 있는 ‘평화적인’ 압박 수단으로 생각한다. 이를 위해 미국에겐 동맹의 적극적인 참여가 관건이다. 미국이 인태전략과 쿼드의 목표를 독자적으로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차기 정부는 우리 국익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전략적으로 고민하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첫째, 미국의 견제 없이 중국의 부상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2001년 9·11 테러사태 이후 동북아지역은 아메리칸 파워의 공백기를 약 10년 경험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중국은 경제적으로 급부상했다. 2002년에서 2007년까지 연평균 10.2%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후 2009년 중국은 독일을 제치고 세계 3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2010년에는 2위였던 일본의 자리를 탈환했다. 그러나 2010년부터 중국은 강력해진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외적인 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의 신호탄은 아세안지역포럼(ARF) 외교장관회담에 참여한 양제츠 당시 중국 외교부장의 발언이었다. 그는 싱가포르 외교장관의 면전에서 ‘중국은 대국, 나머지는 소국, 이것이 사실이다’라며 중국의 주변국과 주변지역에 대한 인식을 여과 없이 노출했다.
이후 중국은 대외적으로 남중국해를 요새화하고, 이 지역의 영해를 국경화하는 데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또한 우리의 바다와 하늘을 밥 먹듯 무단 진입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는 중국의 군사훈련 일환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는 중국이 유사시 우리의 바다와 하늘을 자신의 것으로 인지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2017년 4월 미·중 정상회담 오찬 자리에서 시진핑 주석이 한반도가 역사적으로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발언한 사실은 중국의 속내를 선명히 드러냈다. 이처럼 우리의 영토주권과 안보이익이 중국의 부상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동북아 권력 공백기 동안 중국은 부상했고 북한의 핵개발도 상당한 진척을 보였다. 북한은 이 기간 동안 핵실험을 6차례 단행했으며, 핵탄두의 수송체를 수없이 시험 발사했다. 이 지역에서 미국의 견제가 없으면 안보지형이 어떻게 바뀌는지 우리는 직접 경험했다. 미국이 이 지역으로 회귀하는 일환으로 추진하는 인태전략과 쿼드를 우리가 환영해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이미 체감한 셈이다.
둘째, 인태전략과 쿼드를 한·미동맹이 주도하는 것이다. 인태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데 가장 가치 있는 요충지는 한반도이다. 이런 지리적 위치와 여기서 파생되는 지정학적 전략 가치를 우리는 한·미동맹은 물론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레버리지로 십분 활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인 군사안보전략에서부터 재편되는 경제안보전략과 글로벌 공급망에 이르기까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중국에게도 한·미동맹 주도형의 인태전략과 쿼드는 미·일동맹이 주도하는 것보다 덜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인태전략과 쿼드를 일본이 주도하는 것은 자칫 일본의 정상국가화와 군국주의의 부활을 유발할 수 있는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와 한·미동맹이 인태전략과 쿼드를 주도하면 한·미관계의 신뢰와 믿음도 증강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우리는 이 전략 구상의 핵심이 될 수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소위 말하는 ‘인싸’가 되어 미국의 전략질서에 유의미한 한 축이 되는 기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인태전략 보고서에서도 드러났듯 미국은 이를 기반으로 사이버질서를 구축하고, 무역질서도 더 높은 수준의 것으로 개편하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인사이더, 소위 ‘인싸’로서 질서의 핵심인 제도와 규범을 창설하는 ‘룰 메이커’가 될 수 있다. 우리의 국제적 위상과 4차 산업의 핵심 기술 역량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다. 더 나아가 서구가 구상 중인 우주질서에서도 우리가 ‘인싸’로 활약하는 데 도약의 발판으로 활용될 가치가 충분히 있다.
셋째, 인태전략과 쿼드의 운영에 중국이 관심을 두도록 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우리가 미국과 함께 인태전략과 쿼드를 성공적으로 운영해서 지역통합체로 승화시키면 중국도 이에 참여를 원할 것이다. 특히 경제안보와 글로벌 공급망이 이 두 전략에 기초해 재편될 경우, 중국은 참여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의 유사한 사례를 ‘나토(NATO)’에서 찾을 수 있다. 1997년 나토와 러시아 간에 협의체를 만들어 유럽안보체제 구축에 협력하기로 합의한 사실과, 2001년 푸틴 대통령이 나토 가입 의사를 밝힌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인태전략의 목적 중 하나가 역내 평화와 안정, 발전과 번영이기 때문에 중국의 참여를 유발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따라서 중국의 저항과 반발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이를 훌륭한 작품으로 승화시켜 중국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되도록 만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겠다.
미국에게 대한민국은 없어서는 안 될 전략적 존재가 되었다. 중국에게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선호하는지 간파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의 지정학적 전략가치가 상승하고 있을 때 우리의 전략적 사고를 적극적으로 전환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핵심멤버로 호기를 놓치지 말고 적극 이용해야 할 것이다. 무역질서, 지역질서, 사이버질서, 더 나아가 우주질서 확립과정에서 우리가 입안자가 되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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