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영화는 없었다. 섬뜩하고 유쾌하며 사랑스러운 호러 영화라니. 이 영화를 쉽게 정의할 수 없었고, 어떤 장르에도 욱여넣기 아까웠다. 클래식한 문법을 따르다가도 익숙해질 만하면 거침없이 클리셰를 깨버리는 영화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은 등장만으로도 새 파장을 일으켰다.
영화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이하 '아메바 소녀들')은 학교괴담이 현실이 되어버린 개교기념일 밤 저주의 숨바꼭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공포를 담고 있다.
단편 영화로 국내외 유수 영화제를 휩쓴 김민하 감독(34)은 자신의 단편 '빨간마스크 KF94'를 확장해 '아메바 소녀들'을 만들었다. 특유의 유머와 질감이 돋보이는 자기 작품들처럼 김 감독 역시 유머러스하고 유쾌한 면면을 만날 수 있었다.
"영화가 클래식하면서 현대적이라고요? 제가 '밈'을 즐기는 편이거든요.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만 보더라도 흐름을 읽을 수 있어요. 많이 보기도 하고요. 하하. 하지만 작품에 그런 밈을 많이 반영하는 건 아니에요. 잘 골라 써야죠. 힘이 빠질 수 있거든요. 자연스럽게 빌드업하는 게 중요해요. '은별' 역할은 '밈'이 필요한 캐릭터여서 (숏폼을 통해) 소스를 확보했어요. 아이들의 관계성이나 자존감 등도 이를 통해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영화 '아메바 소녀들'은 마냥 아이들의 유쾌함만을 다루지 않는다. 과열된 입시 교육이나 학교 폭력 등 사회적 문제들을 짚으며 관객들에게 생각해 볼 만한 거리를 준다.
"제가 코미디를 좋아하는데 (코미디에는) 시대 슬픔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찰리 채플린의 작품들을 보면 슬픔의 시대고 인간은 부품처럼 다뤄지는데 거기에서 웃음이 터지잖아요. '아, 이게 코미디구나' 느꼈어요. 저도 거기에 영향을 많이 받은 거 같아요. 유쾌한 호러 코미디지만 그 안에는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경쟁 현실이 담겨 있어요. '민주' 역시 동떨어져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교내 따돌림이나 학교 폭력 등을 다뤘고요."
사회적 문제를 다룰 때 많은 작품이 계몽적 사고를 녹여내며 관객에게 반감을 사기도 한다. 그러나 '아메바 소녀들'은 가르치는 태도 없이 극장을 나설 때 자연스레 머릿속에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지점들이 있다.
"저는 절대 관객을 가르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보며 생각을 깨우치는 모멘텀이 될 수는 있겠죠. 지금은 정보의 시대고 가르침을 받을 만큼 모르지 않죠. 한가하지도 않고요. 지금 시대 영화의 역할은 뭘까요? 위로와 재미라고 생각해요. 집단 지성과 삶의 지혜에는 (영화가) 게임이 되지 않아요. 그걸 인지하면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포영화의 외피를 입고 있는 '아메바 소녀들'은 여러 실험적인 시도를 거듭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 본인을 투영해 만들었다는 '지연'은 관객과의 벽을 깨며 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2막 진입' '클리셰' '이런 설정이야' 등의 대사는 쓰면서도 참 재밌었어요. 호러의 클리셰를 비트는 설정이잖아요. '지연'이 짚어주는 게 관객들에게는 코미디로 다가가길 바랐어요, 영화가 너무 무섭게 느껴지지 않게 중화될 수 있었으면 했거든요. 그걸 핑퐁해 주는 건 '은별'이에요. 벽을 깨는 '지연'의 대사에 '뭐? 이제 가자'라는 등 다시 흐름을 끌고 오는 식이죠. 그런 톤 조절도 시나리오 쓸 때 재밌는 부분이었어요. 어우러지는 모습이 재밌더라고요."
극 중 등장하는 '저주의 인형'이 '윌리밍키'라는 깜찍한 이름을 가졌다는 점도 웃음 포인트 중 하나였다. 김 감독은 "'윌리밍키'를 김도연씨가 소속된 그룹 위키미키에서 따온 게 아니냐고 하는데 일찍이 정해진 이름"이라고 말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 캐릭터에 이입해서 이것저것 만들었어요. 그러다가 '인형 이름으로 한 구간을 만들 수 있겠는데?' 싶어서 '은별'이를 포인트 삼아 만들었죠. '은별'의 머릿속에는 전형적인 바비 월드가 있거든요. '데뷔할 때 활동명으로 쓰고 싶어 한다'는 설정이 있습니다."
김 감독은 영화의 메시지가 바로 '윌리밍키'라고 말하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 '설국열차' 중 그런 대사가 있잖아요. '저 문이 하도 오래돼서 아무도 문인 줄 모른다. 벽인 줄 안다'라는 식의 대사요. '윌리밍키'도 마찬가지예요. 1998년도에는 '박말숙'으로 불렸고 공포의 대상이었잖아요. 학생들이 속세를 떠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기도 하고요. 그러나 '윌리밍키'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뒤 (현재의) 학생들은 그를 향해 달려 나가요. 그 사이 '윌리밍키'가 노쇠한 걸까요? 아니에요. 처음부터 그는 약한 존재였어요. 막상 붙어보면 별거 아닌 존재죠. '설국열차'의 벽을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이전 세대가 만든 한계나 사회적 관념을 넘어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환경에 순응하지 말자. 오늘날의 소녀들은 그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고 그다음 세대는 그와 맞붙으러 나가는 모습이 이 영화의 메시지예요."
김 감독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필름 위크에서 인상 깊은 경험을 했다며 눈을 반짝이기도 했다.
"GV 때 히잡을 쓴 관객과 만났어요. 소녀들의 용감함에 관해 이야기하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묻더라고요. 사회적인 혹은 종교적인 일로 억눌려 있을 수 있잖아요. 영화 속 소녀들의 자존감이 히잡을 쓴 소녀들에게도 용기가 되는 거구나. 이 영화가 자생력을 가지고 모두의 것이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김 감독은 영화의 독특한 리듬감과 톤이 개인의 '취향'이기도 하지만 배우들에게 영감을 받은 요소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개교기념일 전날 학교에 잠입하는 장면이 있는데 약간 만화적이거든요. 시나리오에서는 그냥 걸어가는 설정이었는데 현장에서 만들었어요. 이전 회차까지 배우들이 보여준 모습이 정말 사랑스러웠고 무척 협조적인 데다가 배려심 넘치는 모습을 봐서 하나라도 (돋보이도록) 더 만들고 있었고 뛰어오는 걸 찍으면서 '이런 동작을 보여주면 귀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들었어요."
김 감독은 배우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도연씨(위키미키)와 주연씨(우주소녀)가 아이돌 그룹 출신인 줄 몰랐어요. 워낙 끼가 대단한 분들이어서 '아이돌 생활도 훌륭히 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의 신께서 때가 되어 부르신 느낌이 들어요. 끼고 대단하고 현장에서 임하는 태도도 인상 깊었습니다."
야구 응원가를 들으며 시나리오를 쓰고 인터뷰 현장에도 LG 트윈스의 굿즈를 입고 등장했을 정도로 열렬한 야구팬인 김 감독은 영화 '아메바 소녀들' 역시 야구에 비유했다.
"우리 영화는 사랑스러운 소녀들이 던지는 변화구라고 생각해요. 직구라고 생각해서 배트를 휘둘렀는데 변화구인 거죠. 저를 비롯하여 촬영감독, 배우들도 모두 1990년대생이거든요. 젊은 창작자들이 만든 작품인 만큼 그런 기운들이 담겼을 것으로 생각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김 감독은 영화 '아메바 소녀들'을 시리즈로 기획했다며 "영화가 잘 되면 6편까지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제 차기작은 '아메바 소녀들2'가 될 것 같아요. 이 영화의 부제는 '교생실습'입니다. 1편과 다른 독립적인 이야기가 될 거로 생각하고 작업하고 있어요. 아마 이 궤적은 아닐 거예요. 그랬다가는 바로 안타 맞지. 하하하. 이렇게 시리즈를 쌓다가 6편이 되면 '총동문회'로 1~5편의 소녀들이 모두 등장하는 이야기로 만들고 싶어요. 미리 배우들에게도 허락을 맡았으니.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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