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도전 후 한국산업은행 회장, 주(駐)OECD 대사, 하이브 고문….
나열된 직책만 보면 어느 행정고시 출신 관료나 국회의원의 화려한 프로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차기 행보로 언급된 자리다. 대통령실 수석, 장관급 위원장 등 공공연하게 떠돈 이야기까지 더하면 오르내린 하마평은 더 많다. 금융당국에서 이 원장만큼 이동설에 많은 관심을 받았던 인사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지금은 3년 임기를 모두 채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의 리더십은 예전만 못 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급물살을 타면서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이 원장의 레임덕이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배지를 눈앞에 두고 이젠 엔터테인먼트 자문위원 자리까지 기세가 떨어졌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금융권에서는 이 원장이 리더십 공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우리금융지주를 활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당초 레임덕을 겪거나 금감원장이 교체될 경우, 우리금융의 압박 강도가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봤는데 이를 역이용해 본인의 입지를 다지려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현재의 정치상황을 방패 삼아 영향력을 과시하거나 떨어진 위상을 회복하기까지 시간을 번 것 아니냐고 분석했다.
실제로 우리금융·우리은행에 대한 검사 결과는 지난해 12월에서 올 1월로 연기됐고 다시 2월로 미뤄졌다. 이 과정에서 이 원장은 "제대로 매운맛으로 알리겠다"고 경고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이 원장과 금감원의 이 같은 행보는 시장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금감원 발표 내용이 탄핵정국과 엮을 만큼 국민 실생활이나 국가적 안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사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결과 없이 발표 예고만 수차례 하면서 '이슈 몰이'를 하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비상계엄 파동 후 일주일 만에 단행된 대규모 인사도 이 원장이 조직 장악력을 높이는 카드로 썼다. 그는 실국장을 포함해 부서장 75명 중 74명을 교체하는 대대적인 인사를 내며 "위기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사는 이 원장이 100% 전권을 갖고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본인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도 '국가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기에 굳이 대규모 국장급 인사를 실시했어야 했냐'는 지적이 나왔다.
통상 임금피크제 적용을 1년 앞둔 부서장 위주로 보직을 내려놓았는데 이 원장 체제에 들어서면서 그간의 관행은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2023년과 2024년 보임 해지된 인원은 각 30명으로 예년의 2배 수준이다. 해임된 부서장의 마지막 부서 근무기간도 크게 줄어 평균 1년 미만으로 내려갔다. 워낙 대규모 인사여서 차기 금감원장이 활용할 수 있는 '인사 카드'가 없을 것이란 걱정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와 맞물려 금감원을 바라보는 시장의 눈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금감원이 앞선 2년처럼 강한 존재감을 과시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원장이 본인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혹은 권력누수를 막기 위해 감독권이나 인사권을 남용해선 안된다.
금융당국이 정책의 지속적인 효과를 얻기 위한 절대적 가치는 예측가능성이다. 지금과 같은 대내외 상황에서는 이 의미를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책에는 정무적 판단이나 개인의 이익 추구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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