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국정농단 사건 이후 줄곧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옭아매었던 사법리스크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검찰이 대법원 상고를 강행하면서다. 1·2심 모두 무죄 판결 이후 이 회장의 ‘뉴삼성’ 전략에 본격 시동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다시 희석되면서, 그의 ‘경영 족쇄’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 이후에야 풀릴 것으로 보인다.
8일 재계에 따르면 검찰이 전날 이 회장의 회계부정 의혹 사건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한 가운데 산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의 ‘잃어버린 10년’을 누가 책임질 것이냐는 지적과 함께 과도하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전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는데도 검찰이 상고를 한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라며 “지난 10년여간 경영 차질을 빚은 삼성의 공격적인 경영 행보에 또 제동이 걸렸다”고 우려했다. 재계에선 2심 무죄 판결 이후 이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 그룹 컨트롤타워 재건 논의 등이 다시 대법원 판결 이후로 미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 안팎에서도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1·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은 만큼 대법원에서 결론이 뒤집힐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보면서도, 향후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경영 활동에 제약을 받는 등 사법리스크가 장기화하는 데 대한 우려에서다. 삼성 관계자는 “관련해 입장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검찰의 상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하태경 보험연수원장은 8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태어나서 처음 삼성그룹 편, 친삼성 발언을 한다”며 검찰을 향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상고 취하를 요구했다. 하 원장은 “삼성은 일개 기업이 아니라 국가대표 기업으로 삼성이 활력을 보이면 외국 투자자가 들어와 환율도 안정되고 주식시장도 살아나는 등 국가 경제가 안정되는 반면 삼성 위기가 심화되면 경제 불안정성도 커지게 마련”이라며 “이번 검찰 상고는 경제 폭거라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이 회장의 부당합병 혐의에 대해 1심에 이어 2심까지 무죄가 나오면서 검찰의 무리한 기소 아니냐는 논란이 들끓었다. 이에 지난 6일에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2심 모두 무죄가 선고된 데 대해 “(당시) 공소 제기 담당자로서 국민께 사과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원장은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를 지내며 이 회장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주도한 인물이다. 이 원장의 발언은 삼성 관계자들에 대한 사건 기소가 애초에 무리였음을 시인하는 대목으로 풀이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 회장에 대한 검찰의 상고 소식이 알려지면서 ‘기계적인’ 상고에 나섰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선 1·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은 만큼 대법원에서 결론이 뒤집힐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검찰의 상고로 오는 3월 이 회장이 주주총회를 거쳐 삼성전자 등기이사로 복귀할 것이란 기대감도 불투명해졌다. 이 회장이 무죄 판결을 받은 다음날인 지난 4일, 삼성 서초사옥으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초청해 ‘3자 회동’을 통해 나눴던 글로벌 AI 프로젝트 ‘스타게이트’ 논의 역시 마찬가지다.
재계 관계자는 “결국 대법원 선고까진 대규모 인수합병(M&A) 추진 등 뉴삼성 구축을 위한 작업도 속도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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