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러시아 주도로 첫 걸음을 내디딘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시작부터 파열음을 내고 있다. 협상에서 배제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이를 주도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허위 정보 공간에 산다”, “독재자”와 같은 원색적 비난까지 주고받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러 회담이 만족스러웠다며 표정 관리에 들어갔고, 협상에서 ‘패싱’ 당해 뚜렷한 대안이 없던 유럽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적극 엄호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전쟁을 이유로 대선을 치르지 않은 채 임기 만료 후에도 권좌를 지키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칭하며 “서두르지 않으면 나라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전날 젤렌스키 대통령을 겨냥해 ‘4% 지지율의 대통령’ 등이라고 공격한 데 이어 이날은 ‘독재자’라며 비난 수위를 높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겨냥해 “미국을 설득해 3500억 달러를 지출하게 만들었다”며 “그는 우리가 보낸 돈의 절반이 없어졌다고 인정한다”고 지적했다. 전쟁 지원금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비리 의혹을 제기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럼프식 협상 방식에 불만을 터뜨리며 대립각을 세웠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같은 날 자국 TV 방송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은 허위 공간에 살고 있다”며 자신의 지지율이 4%에 불과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에 응수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미·러 회담을 비롯한 미·러관계 개선 움직임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3년간 이어진 러시아의 고립을 끝내는 데 도움을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미측이 지원의 대가로 우크라이나 희토류 자원 지분 50%를 요구한 데 대해서도 “우리나라를 팔 수는 없다”며 일축했다.
두 정상 간 갈등에 푸틴 대통령은 뒤에서 미소를 짓는 형국이다. 타스 통신 등 러시아 매체들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드론 생산 공장을 방문해 기자들과 만나 미·러 회담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며 “높게 평가한다. 결과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푸틴 대통령은 “미국은 협상 과정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모두 참여해 열릴 것으로 가정한다”며 “아무도 우크라이나를 이 과정에서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젤렌스키 때리기’에 맞서 유럽 정상들은 젤렌스키 대통령 엄호에 나섰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로 인정하며 지지를 표명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됐으며 위험하다고 독일 주간지 슈피겔에 밝혔다. 스테판 뒤자릭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정당하게 실시된 선거에 따라 재직 중이며, 전쟁을 시작한 것은 러시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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