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의 열쇠’를 지닌 성 베드로의 후계자, 차기 교황을 향한 전 세계 관심이 뜨겁다. 가톨릭 신자 14억명에게 교황은 교회의 수장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와 이어주는 영적 지도자다. 이르면 내달 초 80세 미만인 추기경 135명은 프란치스코 교황 후임자를 선출하기 위해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 ‘최후의 심판’ 앞에 선다. 새 교황을 뽑기 위한 추기경단의 비밀투표 콘클라베(Conclave)는 통상 교황 선종 후 15~20일 이내에 진행된다.
새 교황을 선출할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 135명 가운데 108명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한 인물들이다. 이로 인해 진보 성향인 교황이 탄생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지만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 다수가 유럽 출신(53명)이란 점은 전통적 가치관을 고수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강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아시아계를 포함한 제3세계 인물이 ‘열쇠’를 쥘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이번 콘클라베에 아시아계 추기경이 23명이나 참여할 뿐만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한 ‘탈(脫)유럽화’ 기조가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유흥식 추기경도 유력 후보…한반도 평화 노력
유력한 차기 교황 후보 중 한 명은 한국 출신인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74)이다. 그는 다가올 콘클라베에서 선거권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피선거권도 누린다.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인 코리에레델라세라 등 바티칸 사정에 정통한 주요 언론은 유 추기경을 주목하고 있다.유 추기경을 유력 차기 교황으로 꼽는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2021년 6월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발탁돼 바티칸 핵심부에서 활동하며 인맥 등을 쌓았다. 아울러 북한을 네 차례나 방문하며 남북 협력과 한반도 평화 증진을 위해 힘써왔고 탈권위적 태도, 사회적 약자를 향한 관심, 뛰어난 행정력까지 갖췄다. 전통과 변화를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리더로 평가받는다.

유 추기경은 한 매체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을 진심으로 사랑한 분이었다"며 "대한민국의 분단 현실을 특별히 안타까워하며 형제와 가족이 갈라진 이 크나큰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면 당신께서 직접 북에도 갈 의향이 있다고 하셨을 만큼 한국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1951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유 추기경은 논산 대건고를 나왔다. 16세에 세례를 받은 그는 서울 가톨릭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1976년 로마로 이주해 1979년 그곳에서 사제품을 받았고, 1983년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에서 교의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대전교구장으로 재직하던 2021년 6월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전격 발탁됐고, 2022년에는 김수환·정진석·염수정 추기경에 이어 한국으로는 네 번째 추기경에 서임됐다.
필리핀, 콩고 출신 추기경도…'중국 전문가' '전통가치 수호자' 등

피에트로 파롤린(이탈리아), 프리돌린 암봉고 베숭구(콩고민주공화국), 페테르 에르되(헝가리),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필리핀) 등이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필리핀 출신인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은 진보적이고 유머러스해 ‘아시아의 프란치스코’로 통한다. 그는 2019년 교황청 인류복음화성(현 복음화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아시아 지역 전문가로 통한다. 그는 2018년 교황청과 중국이 체결한 주교 임명 합의안을 작성한 인물이다. 이 합의안은 교황청이 중국 정부가 임명한 주교를 승인하는 대신 중국 정부는 교황을 세계 가톨릭교회 최고 지도자로 인정하는 내용이 골자다.
마테오 주피 추기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우크라이나, 러시아, 미국, 중국을 방문하는 등 교황청 고위급 특사로 활동했고,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서 중재인으로 역할했다. 프린돌린 암봉고 베숭구 추기경은 아프리카 신자들의 지지가 막강하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3년에 동성 커플 축복을 허용하는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미국 출신인 블레이즈 쿠피치 추기경과 조지프 토빈 추기경 모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민자 추방 정책을 비판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서임한 페테르 에르되 추기경(헝가리)은 보수파의 유력 후보로, 유럽의 난민 수용과 이혼·동성혼에 반대하는 등 전통적 가치관을 수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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