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공계 의대 쏠림 현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과학기술계가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특히 MZ세대 학·석·박사의 인재 확보를 위해 파격적 연구환경-일자리-보상설계 등 생애 전주기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와 한국과학기술한림원(한림원)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현·최형두·조인철·최수진·황정아 의원과 함께 '제2차 첨단과학기술 이공계 인재 양성 정책, 국경 없는 과학기술 인재전쟁'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이공계 학생들이 과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의학계로 진로를 틀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진단과 함께, 우수 인재를 과학기술 분야로 유도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들이 논의됐다.
이원홍 KISTEP 인재정책센터장은 "학령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공계 석·박사 역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라며 "여기에 우리나라 이공계 인재의 의대 쏠림이라는 질적인 문제까지 덧붙여지면서 상황이 좋지 않다"고 진단했다.
유필진 성균관대학교 기획조정처장도 "초등학생의 의대 준비반이 있을 정도로 학습이 의대에 매몰돼 있는 상태"라며 "지난해 있었던 의대 증원 이슈로 인해 4대 과기원(KAIST, UNIST, GIST, DGIST)의 연구인력들의 중도 이탈률 발생이 심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실제 입시와 재학 현황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연세대·고려대(SKY) 이공계 학과를 중도 이탈한 학생 수는 1337명으로, 최근 3년 사이 가장 많았다. 4대 과기원에서도 지난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총 1181명의 이공계 인재가 학교를 떠났으며 지난해에는 학부 신입생과 대학원생 모두 충원율 미달 사태가 발생해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과학기술 인재의 유출도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두뇌유출 지수는 3.1을 기록했다. 유 처장은 "이 수치는 낮을수록 좋기 때문에 수치만 봤을 땐 양호하다 판단할 수 있다"며 "그러나 기술경쟁력을 가진 호주(0.3), 싱가포르(1.0), 미국(1.4), 독일 (1.6) 등 국가와 비교했을 때 매우 높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산업계와 연구계의 인력 미스매치까지 심화하고 있는 상황도 연구 인력의 유출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지난 2016년부터 2020년 사이 이공계 박사 인력 대비 실제 박사급 과학기술 일자리 비중은 54%에 불과했다.
유 처장은 "이공계 연구인력의 중심축이 MZ세대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자유롭게 연구활동을 할 수 있는 정책적 대응이 시급하다"고 피력했다.
특히 유 처장은 이들을 위한 생애 전 주기적 지원 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3+1.5+2.5(7)년제 학·석·박사 통합 학위 제도 신설은 물론 기업과 대학이 공동으로 학위를 수여하는 산학 공동학위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박사 인력이 창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개방형 창업 활동을 학위 과정의 일부로 인식하는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도 과학기술 인재 확보를 위한 다양한 제언이 쏟아졌다.
김근수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는 "현재의 이공계 인재의 의대 쏠림 현상은 과학기술인에 대한 낮은 처우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중국의 '원사 제도'를 이야기하며 "중국에서는 과학기술인이 최고의 영예라고 인식되고 있다"며 "과학자 한 명이 연구기관처럼 인식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홍용택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중견 과학자들이 국내에서 마음껏 창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인재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조길원 포스텍 석학교수는 지난해 있었던 연구개발(R&D) 예산의 삭감을 언급하며 "이 부분이 과학기술인이 정부에 대해 가지는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기초기반 연구가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인공지능(AI), 바이오, 양자뿐 아니라 기초기반 연구를 복원하는 정부의 역할이 우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어윤희 ETRI AI인재양성실장은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총액인건비제도 때문에 연봉을 민간처럼 올릴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며 "이를 정부와 협력해 해결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어 실장은 "ETRI 같은 경우는 대전에 본교가 있다 보니 인재가 오지 않는다"며 "정부와 지자체, 산학이 협력해 지역 R&D 여건을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견 현대차그룹 경영연구원 원장은 “현재 과학기술계가 처한 상황은 경제계 관점에서 보면 과학기술 생태계의 붕괴로 볼 수 있다”며 “이는 특정 정부의 단기 처방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인재 양성과 같은 핵심 분야에 장기적이고 우선적으로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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