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갈라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안팎에서 동시에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에서는 정치적 고립, 중국에서는 사업 기반 약화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6일(현지시간) 머스크와 테슬라가 중국 시장에서 겪는 고전 양상을 집중 조명했다.
한때 테슬라는 중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전기차 브랜드였다. 머스크 역시 중국 정부의 ‘특급 귀빈’으로 통했다. 중국 정부는 테슬라를 ‘메기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각종 인센티브를 퍼부었다. 값싼 토지, 세금 혜택, 저금리 대출이 쏟아졌고, 2018년에는 외국 자동차 업체 최초로 중국 내 단독 공장을 허가받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테슬라는 급성장했고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된 차량은 미국과 유럽 등으로도 수출됐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이 빠르게 기술을 따라잡고 현지 소비자 취향을 적극 반영하면서 시장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WSJ은 중국 소비자들이 테슬라에 싫증이 났으며 현지 취향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브랜드들은 대형 스크린, 냉장고, 셀카 카메라 등 현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기능을 앞세워 테슬라를 넘어섰다. BYD와 배터리 업체 CATL은 5분 초고속 충전 기술을 잇달아 발표하며 배터리 기술력에서도 테슬라를 압도했다.
테슬라 중국 법인 직원들은 본사에 제품 노후화를 꾸준히 경고했지만, 본사는 대체로 무성의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판매 목표는 치솟는데 경쟁력 있는 신차가 부족한 상황에서, 현지 직원들의 좌절감은 누적됐다고 WSJ는 전했다.
WSJ에 따르면 한정 중국 국가부주석이 올해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축하 사절로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머스크를 만나 양국 관계에서 머스크가 ‘건설적 역할’을 해 주기를 희망한다는 중국 정부의 뜻을 전했으나 머스크는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머스크와 트럼프의 관계가 악화한 뒤 중국 정부는 머스크를 더 이상 ‘지정학적 자산’으로 평가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환심을 사려는 시도도 중단했다.
중국의 한 소식통은 “테슬라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당국엔 자국 기업 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테슬라에 중국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미국 다음으로 큰 매출처이자, 글로벌 생산·수출의 핵심 허브다. 상하이 공장은 테슬라 전체 출하량의 절반을 담당하며, 글로벌 부품 공급망의 중심이기도 하다. 특히 머스크가 트럼프 대통령과 친하게 지내면서 미국·유럽에서 실적이 급감한 이후, 중국 시장 의존도는 한층 높아졌다.
중국 정부 역시 여전히 테슬라를 전략적 파트너로 여긴다. 테슬라를 외국인 투자 성공 사례로 내세우며, 전기차·배터리·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의 동반자로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올 초 미·중 무역 마찰이 격화했을 때도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테슬라의 중국 사업이 보복 조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테슬라는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자율주행 기술도 중국 규제 당국에 발목을 잡혔다. 테슬라는 중국 내 자율주행 서비스를 위해 데이터 반출 허가를 추진했지만, 중국 당국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거부했다.
이에 중국 내 서버를 통한 현지 데이터 학습 대안도 검토했으나,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에 막혀 무산됐다. 그사이 중국 업체들은 발 빠르게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 중이다. 바이두, 포니AI 등은 이미 중국 내에서 수천 대의 로보택시를 운행 중이다.
머스크가 공을 들이는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사업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테슬라는 중국 부품 업체들 덕분에 생산 원가를 낮췄지만, 중국 내 로봇 스타트업들이 후발주자로 속속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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