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소비쿠폰 뒤에 숨은 재정 역진성

민생회복 소비쿠폰 1차 신청 첫날일 지난 21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행정복지센터에서 시민들이 소비쿠폰을 신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생회복 소비쿠폰 1차 신청 첫날일 지난 21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행정복지센터에서 시민들이 소비쿠폰을 신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정부의 역점 민생정책인 소비쿠폰 1차 신청 접수가 지난 21일 시작됐다. 1인당 기본 15만원이 지급되는 소비쿠폰은 침체된 소비심리를 되살리고, 지역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경기 부양을 위해 국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이다. 현금성 지원이라는 점에서 그만큼 시민들의 체감도도 높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행정 현장과 재정 현실 사이에 깊은 간극이 존재한다. 소비쿠폰은 국비와 지방비를 절반씩 부담하는 구조로 설계됐지만 문제는 지방의 재정 여력이 이 분담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경기 고양시는 이번 1차 지급을 위해 총 2666억원 규모의 예산을 책정하고 이 가운데 134억원을 시비로 부담한다. 고양시는 인구 106만명인 수도권 특례시지만 재정자립도는 32.27% 수준에 불과하다. 1조원 초반대인 자체 세수로 민생예산을 꾸려야 하는 상황에서 단일사업으로 100억원 넘는 추가 지출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더 큰 문제는 이와 비슷한 복지 매칭 사업이 반복되면서 지방정부가 스스로 계획하고 추진할 수 있는 여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선택적 참여’를 권고하지만 시민 민원이 쏟아질 것을 뻔히 아는 지자체 입장에서는 사실상 ‘강제적 의무’에 가깝다.
 
정작 중앙정부는 정책 발표를 통해 정치적 성과를 강조하며 생색을 낸다. 그러나 실행은 지방정부 몫이고, 비용 또한 지방정부가 짊어진다. 포퓰리즘적 공약이 지방의 재정 위기를 가속화하는 구조다. 소비쿠폰을 받을 때 시민들은 ‘정부가 주는 돈’이라 여기지만 결국 그 재원 상당수는 지역 주민이 낸 세금으로 충당된다. 일시적으로 만족감이 들겠지만 남는 것은 지방정부의 장기 재정 부담인 것이다.
 
이 같은 구조는 코로나19 시기에 경험한 적이 있다. 초기에 국비·지방비 매칭으로 추진됐던 긴급재난지원금은 지방정부의 거센 반발과 여론의 비판으로 결국 전액 국비로 전환된 바 있다.
 
진정한 민생대책은 행정 지속 가능성을 바탕으로 설계돼야 한다. 지금처럼 재정 여건이 열악한 지역일수록 더 많은 부담을 지고, 일부 도시만 정책을 원활히 소화할 수 있다면 결국 ‘지역 격차’가 ‘정책 격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방정부는 현재 딜레마에 빠져 있다. 정부 정책에 협조하지 않으면 주민 불만이 폭주하고, 참여하면 다음 해 필수 예산이 부족해진다. 생활 인프라 확충, 청년 유출 대응, 고령층 돌봄 사업 등 중장기 사업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정부들은 차라리 재정 부담 없는 방식의 지역경제 활성화 수단을 고민하고 있다. 몇몇 지자체에서는 국비로만 운영되는 온누리상품권 확대 등을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발표 이전에 사전 협의와 재정 영향 분석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제는 중앙정부가 실질적인 구조 전환에 나설 때다. 보편정책을 설계했다면 그에 맞는 보편적 재정책임도 온전히 져야 한다. 정부가 지방의 파트너십을 요구한다면 그에 걸맞은 책임 분담과 권한 이양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선심성 복지정책이 반복될수록 재정 격차는 커지고, 자치분권은 퇴행하게 된다.
 
소비쿠폰 하나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소비쿠폰 정책으로 민생경제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정책 시행에 앞서 적어도 막대한 재정 부담을 어디서, 얼마나, 어떻게 짊어지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진행되는 지금의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중앙과 지방정부 간 관계를 재설정하고, 책임 있는 정책 설계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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