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전기차·풍력발전·군수 장비 등 첨단산업의 핵심 소재인 희토류 패권이 '채굴'이 아닌 '정제'에서 갈리고 있다. 전 세계 정제 역량의 85%를 장악한 중국이 공급망을 사실상 통제하는 반면, 한국은 자급률이 10%에도 못 미쳐 산업 기반이 취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9일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중국은 희토류 채굴뿐 아니라 분리·정제 기술에서도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정제 과정은 독성 폐수 처리, 고순도 화학분리, 대규모 설비와 전문 인력이 필요한 고난도 공정으로, 수십 년간 기술과 경험을 축적한 중국만이 본격적으로 상업화에 성공했다.
정제된 희토류는 네오디뮴·디스프로슘 등 고성능 자석, 유로퓸·터븀 등 형광체, 가돌리늄·루테튬 등 의료·원자로 소재로 활용된다. 전기차 1대에는 약 2㎏의 네오디뮴 자석, 대형 풍력터빈 1기에는 수백㎏이 들어간다. 극소량으로도 성능을 좌우해 ‘소량 고효율 자원’으로 불린다.
중국은 최근 희토류 수출허가제를 강화하고 미국행 재수출을 제한하며 자원 무기화를 노골화하고 있다. 이에 미국은 캘리포니아 마운틴패스 광산을 중심으로 정제 기술 확보에 나섰고, EU는 ‘중요원자재법’을 통해 2030년까지 핵심 자원의 자급률을 4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일본은 2010년 중국의 수출 제한 사태를 계기로 베트남·호주 등과 합작을 확대하며 다변화를 추진 중이다. 호주 역시 정제 시설 확충에 나서고 있지만 단기간 내 중국을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한국은 현재 정제 역량이 사실상 전무해 대부분 해외에서 가공된 희토류를 수입해 사용한다. 자급률은 10%에도 못 미치며,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 발생하면 전기차·2차전지·반도체·방산 산업 전반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희유금속 안정적 공급망 확보 전략’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자급률을 5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포스코의 광양 정제 파일럿 플랜트 구축 △에코프로·LX인터내셔널의 해외 광산 지분 투자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의 분리·정제 기술 개발 등 민관 합작 프로젝트가 가동 중이다. 하지만 투자 규모와 속도 모두 주요 경쟁국에 비해 뒤처진다는 지적이 많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희토류 경쟁력은 매장량이 아니라 밸류체인의 수직통합과 정제·소재 단계의 기술 자립에 달려 있다"며 "한국도 단순 광산 확보를 넘어 정제 인프라와 인력, 해외 합작투자를 동시에 강화해야 국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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