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②] 아이들에게는 상상, 어른들에게는 위로 –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고백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은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독자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그의 책 속에는 늘 숨은 그림과 상징이 숨어 있다. 아이들은 그것을 찾아내며 발견의 기쁨을 맛보고, 어른들은 그 안에서 삶을 되돌아보는 사유의 깊이를 얻는다. 광고 디자이너, 의학 일러스트레이터, 연하장 디자이너 등 다양한 길을 거친 끝에 우연히 그림책을 시작했지만, 그 선택은 그의 인생 전체를 바꾸어 놓았다. 그림책은 더 이상 어린이를 위한 책에 머물지 않는다. 브라운의 작품은 삶과 사랑,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매개체이자 세상과 대화하는 언어다. 지금도 그는 새로운 이야기를 구상하며, 언젠가 붓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그림책과 함께하겠다고 말한다.
 
앤서니 브라운 작가사진 김호이 기자
앤서니 브라운 작가[사진= 김호이 기자]


영감은 어디서 얻고, 작품으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 저는 주로 어린 시절 겪었던 경험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게 남아 있고, 제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다. 그런 기억들을 바탕으로 스토리보드를 만들고, 수없이 고치고 다듬으며 이야기를 발전시킨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다 보면 어느 순간 책의 형태가 갖추어지고, 결국 한 권의 그림책이 완성된다.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고릴라’는 어떤 의미를 갖나. 작가님과 닮아 보이기도 한다
- 고릴라, 침팬지, 인간은 모두 유인원 가족이다. 저는 이 사실에서 강한 친밀감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독자들이 제 그림 속 고릴라에서 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독자들은 작품 속 고릴라가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한다. 고릴라는 당신 안의 어떤 부분을 대변하는가
- 인간은 동물이면서도 스스로를 동물과 다르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동물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저는 고릴라를 통해 인간이 본래 동물과 얼마나 가까운 존재인지, 그리고 서로 닮아 있다는 점을 표현하고 싶었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그림책을 만들며 “이 장면이 나를 구했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
-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그런 순간을 경험하지 못했다. 오히려 제 작품이 전시되었을 때 느꼈다. 전시장에 걸린 제 그림들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나는 훌륭하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다. 그것이 제게 큰 힘이 됐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작품에 큰 영향을 준다고 했다. 왜 유년의 기억이 그렇게 중요한가
- 첫 번째 경험은 누구에게나 오래 남는다. 그것은 우리 삶의 기초가 되고 결국 어른이 된 우리를 형성한다. 아동문학 작가들이 유독 어린 시절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 역시 유년기의 감정과 기억을 계속 불러내 작품 속에 담는다.

앤서니 브라운에게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기준은 무엇인가
- 저는 작업할 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림도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느낀 적이 많다. 그래서 잘 그린 그림과 못 그린 그림을 구분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시간이 흘러 그림을 바라보는 제 마음이 바뀌면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진다.
 
인터뷰 장면 사진 김호이 기자
인터뷰 장면 [사진= 김호이 기자]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그림책이 가진 힘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 애니메이션, 만화, 유튜브 영상은 재미있고 생생하지만, 너무 빨리 흘러가 버린다. 반면 그림책은 정적이다. 독자가 책을 앞에 두고 그림을 차분히 바라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놓치지 않고 발견하는 즐거움이 생긴다. 이것이야말로 그림책만의 차별화된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책 작가로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어떻게 극복했나
- 1990년대 후반, 공원에서라는 책을 만들던 때였다. 미래가 불투명하고, 내가 과연 계속 그림책 작가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하지만 1997년 '꿈꾸는 윌리'를 작업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은 그림과 글의 관계, 그리고 그것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순간 다시 기운을 얻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작품 활동을 이어갈 힘이 됐다.

언젠가 붓을 내려놓는 날이 온다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 저는 죽는 날까지 그림책을 만들 거다. 설령 그림책의 시대가 끝나고, 아무도 읽지 않는 시대가 온다 해도 저는 저 자신을 위해 만들 것이다. 그림책은 제 삶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앤서니 브라운 작가 사인 사진 김호이 기자
앤서니 브라운 작가 사인 [사진= 김호이 기자]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지금,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 저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사랑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가치다.

바쁜 일상에 지쳐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말씀 해달라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가자지구의 비극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잊지 않고 바라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믿는다.
 
앤서니 브라운 작가와 사진 김호이 기자
앤서니 브라운 작가와 [사진= 김호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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