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생에너지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변동성 완화와 유연성을 제공할 설비 부족으로 전력도매시장 운영이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생에너지 수급을 보완하는 유연성 설비인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시장구조 형성과 전력시장에 대한 규제기관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4일 발표한 KDI 포커스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응한 전력도매시장 구조개선 방향’을 통해 "재생에너지 비중이 낮을 때 작동 가능했던 현재의 전력도매시장 구조가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전력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을지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 과제를 제시했다.
태양광과 풍력을 비롯한 재생에너지 비중은 2001년 0.04%에서 2023년 8.5%로 크게 확대됐다. 그 결과 전력시장의 시장참여자도 같은 기간 10개사에서 6333개사로 크게 늘었다. 향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30년 18.8%, 2038년 29.2%로 더 빠르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기상 여건에 따라 재생에너지의 공급량이 크게 변동한다는 특성과 전력도매시장의 구조적 한계가 겹치면서 예비 전력 부족이나 출력 불안정에 따른 대규모 정전 사태의 우려가 상존한다.
또 전력 수요자인 기업과 가정이 전력시장을 거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재생에너지 전력을 조달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높을 때는 재생에너지 조달기업과 가정이 도매시장으로부터 전력을 구매하지 않고, 반대로 발전량이 적을 때는 구매가 증가해 도매시장의 수요 변동성이 커지면서 전력도매시장의 일간 거래량 변동성도 확대되는 모양새다.
KDI는 전력량과 용량 가격이 유연하게 결정되는 구조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의 확대는 용량 가격을 상승시키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변동비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증가할 경우 현물시장의 전력량 가격인 전력도매가격(System Marginal Price, SMP)이 평균적으로 하락하게 돼 다른 발전원들의 수익성이 악화된다는 지적이다.
또 재생에너지 외 발전원들이 선도시장에서 설비를 투자할 유인이 감소하게 된다는 점에서 동일한 예비용량을 유지하기 위해 용량가격의 상승이 필요하게 된다.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는 보조서비스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기상 조건에 따라 발전량이 급변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주파수와 전압이 적정 범위를 쉽게 벗어날 우려가 있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 · 분 단위의 주파수나 전압을 조정해 주는 보조서비스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보조서비스가 갖춰지지 않을 경우 작은 출력 변동만으로도 전력 수급의 실시간 균형이 깨지고 대규모 정전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하지만 국내 전력도매시장은 발전사 입찰가격이 아닌 연료비 기반 변동비 평가로 가격이 정해진다. 이는 변동비가 거의 없는 재생에너지에는 적용이 어렵다. 이 때문에 재생에너지는 우선 구매되지만, 공급 과잉 시 출력제어 기준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
KDI는 늘고 있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고려해 전력도매시장을 현행 변동비 평가 방식에서, 발전사들이 전력량 가격을 직접 입찰해
경쟁하는 가격입찰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를 포함하는 가격입찰제 방식을 도입해 전력도매가격이 시장의 전체 수급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고 출력제어를 비롯한 시장 운영의 기준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전력시장에 대한 규제기관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짚었다. 독립 규제기관이 직접 도매시장의 용량 및 보조서비스 보상 체계를 비롯한 가격 산정 규칙과 시장지배력 감시 등 전력시장 전반에 대한 일관적 규제를 담당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KDI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전력도매시장의 정산 구조가 바뀌어도 소매요금에 반영되지 않으면, 발전사와 판매사가 한정된 재원에서 수익을 조정할 수밖에 없다"며 "도매시장 가격 변동이 소매요금에 원활히 전달되도록 개선해 투자 유인이 제대로 작동하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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