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리스크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지정학적 리스크다. 마치 농사짓는 사람이 홍수와 싸움해야 하고, 집을 짓는 사람이 지진을 이겨내야 하는 듯한 상황이다.
지경학적 분절화와 한국 경제
세계화(Globalization)의 시대가 가고 지경학적 분절화(Geoeconomical Fragmentation)의 시대가 왔다. 지경학(Geoeconomics)은 경제적 수단, 즉 무역정책, 경제정책, 경제 제재 등을 사용하여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지정학(Geopolitics)이 지리적 요인을 기반으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과 달리 지경학은 경제를 '무기' 삼아 국가 간 '패권전쟁'을 벌이는 것을 뜻한다.
세계 경제가 뒤틀리고 있다. 먼저, 공간적으로는 잘 맞추어진 지구본 퍼즐이 흩어져 파편화되고 있다. 세계 주요국들이 이념을 뒤로하고 실리적으로 협력할 국가들과 연대하고 있다. 한편 시간의 이동을 고려했을 때 2025년과 2026년이 극명하게 구분되는 모습이다. 시공간적으로 세계 경제는 분절화되고 있다. 필자가 <스테이블코인 전쟁 2026년 경제전망>을 통해 2026년 경제를 분절점(Point of Fragmentation)이라고 명명한 이유다.
2026년 한국 경제에 변수로 작용할 하방 압력은 지정학적 리스크다. 지정학적 불안과 긴장감은 한국의 대외거래에도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기업의 투자심리와 가계의 소비심리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준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분쟁과 같은 지정학적 불안의 정도에 따라 경제 여건이 달라질 것이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전쟁이나 미·중 패권전쟁이 격해질 수도 있다.
2026년 한국 경제 전망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시나리오를 전제로 하겠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더 고조될 것인지, 지금과 같은 수준에서 유지될 것인지, 아니면 완화 혹은 해소될 것인지에 따라 다른 흐름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중립적인 전제를 담은 기준 시나리오를 가정했을 때 2026년 한국 경제는 1.5%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2025년 한국 경제가 이례적으로 저성장했고 기저효과에 따른 부풀려진 숫자임을 감안해야 한다. 그런데도 한국은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저성장의 고리에 던져진 듯하다. 2026년까지 지정학적 리스크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제했다. 관세전쟁과 미·중 패권전쟁도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즉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2026년까지 18% 수준을 유지하고, 한국에 대한 평균 관세율도 16%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조건을 상정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으로 인해 대미 수출뿐만 아니라 대중 수출에도 어려움이 있겠다. 더욱이 대미 투자를 약속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확대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물가 상승률은 점차 2% 이하로 내려오지만 여전히 물가 그 자체는 높게 오른 채 더 오르기만 한다. 2025년보다는 경제지표들이 다소 개선세를 나타내는 듯하지만 숫자와 현실은 상당한 괴리가 있을 것이다.
둘째, 낙관적인 시나리오하에서는 2026년 한국 경제가 2.2% 수준의 성장을 이룰 것으로 전망한다. 2025년 한 해 대외 경제 여건을 억눌렀던 지정학적 리스크 다소 완화될 것을 가정했을 때다. 미·중 패권전쟁의 소재는 매우 장기적인 경제적 변수이겠지만 그 정도가 격화되거나 다소 완화되는 국면이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기준 시나리오에 비해 미국의 평균 관세율이 15%로 하락하고 한국에 대한 평균 관세율도 16%로 떨어지면 수출 여건이 크게 개선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 주요국들도 보호무역 조치를 다소 완화하고 세계 교역량이 증가할 것이다. 2025년부터 본격 시동을 걸었던 세계 주요국들의 확장 재정 및 유동성 확대가 마중물 역할을 하면서 자본시장에도 활력이 돌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비관적인 시나리오하에서는 2026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0.9%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한다. 기준 시나리오에 비해 미국의 평균 관세율이 20%로 상승하고 한국에 대한 평균 관세율도 20%로 상승할 것으로 전제했다. 지정학적 불안이 고조되고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세계 교역량이 감소하고, 글로벌 기업들의 신규 투자가 제약된다. 한국의 대미 수출뿐만 아니라 총수출 자체가 둔화하게 된다.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 완화적 통화정책을 단행해도 경기 부양 효과가 채 나타나지 않는, 이른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진다. 글로벌 교역환경은 악화되고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더욱 취약하게 흔들릴 수 있다. 세계 주요국들이 기준금리를 적극적으로 인하한다 하더라도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얼어붙게 되고 내·외수 경제가 동반 침체하는 악순환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한다.

2026년 분절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2026년은 순탄한 길이 아니다. 험난한 여정이다. 글로벌 경제는 파편화된 경제 체제로 바뀌고, 세계 교역체제는 자유무역주의에서 극단적 보호무역주의로 변화하는 양상이다. 세계 경제는 2020년 이전 수준의 중성장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저성장으로 고착할 전망이다. 2026년 우리는 처음 경험해 보는 분절화된 세계 경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모색해야 한다.
정부는 복잡한 국제 정세 변화에 유연한 대응책들을 갖추어야 한다. 안미경중은 사라졌다. 안보는 미국이고, 경제는 중국이라니. 미국과 중국 모두 중요하다. 지정학적 긴장감과 경제학적 경쟁 구도가 복잡하게 얽힌 새로운 숙제가 던져졌다. 빼앗으려는 자와 뺏기지 않으려는 자 간에 치열한 세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외교, 통상, 경제정책을 총동원하고, 기업-정부-전문가들의 지략을 모아야 한다. 다양한 대응 전략들을 갖춰야만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베테랑 타자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투구를 준비해야만 제대로 상대할 수 있듯 말이다.
복잡한 숙제를 풀 공식은 간단할 수 없다. 실리적 외교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념적으로 함께하는 동맹국들과 이해관계를 함께하기 어려울 수 있다. 외교·안보적으로 동맹관계를 굳건히 하되 경제적 파트너 관계는 별개가 되도록 해야 한다. 합종연횡으로 새로운 파트너십이 형성되고,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될 것이므로 기술협력·수출입·공급망 구조 등을 재편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업은 ’세계 경제의 저성장 고착화’에 대응해야 한다. 저성장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게을리함이 없어야 한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 수준이지만 AI 관련산업의 성장세는 25%에 달한다. 실제 엔비디아의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증가하고 있다. 끊임없이 관련 혹은 비관련 산업에 걸쳐 유망산업으로 진출하는 것을 시도해야 한다.
‘지경학적 분절화’라는 큰 힘이 세계 경제의 판도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없다. 극단적 보호무역주의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 세계 주요국들이 무역 제한 조치를 확대하고 있는 추세다. 수출 기업에 걸림돌로 작용할 만한 요소가 많아졌다. 앞만 보고 열심히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수출 대상국들이 어떤 보호무역 조치를 새롭게 도입하는지를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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