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트럼프식 잘못' 타산지석 삼아야

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트럼프의 그립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베네수엘라 공습부터 그린란드 합병 시도에 이르기까지 트럼프의 기세는 끝없이 뻗쳐 나가고 있다. 트럼프가 이처럼 동서남북 전횡할 수 있는 배경은 미국의 세계 최강 군사력은 물론 달러화의 발권력, 세계 최대의 시장, 첨단 IT 기술 보유 등 경제적 파워가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3년 후 트럼프 임기가 끝나면 트럼프의 정책은 커다란 실패로 평가될 것으로 본다. 시장의 흐름을 정치적 힘의 논리로 가로막고 국제 경제의 질서를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트럼프 퇴임 이후 세계 경제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트럼프에 대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물러나더라도 미국 내 상당수가 지지하고 있는 국익 중심의 트럼프식 정책 기조는 약해지지 않을 전망이다. 트럼프 정책의 밑바닥에는 먹고사는 문제와 일자리 문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 부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트럼프는 상품 무역 대신에 매몰 비용 등 위험 부담이 큰 국제투자로 협력의 패턴을 억지로 바꿔 놓았다. 대미 투자가 차질 없이 이행되기 위해서라도 트럼프의 관세보다는 낮아질지 몰라도 미국 중심으로 상당히 높은 관세가 유지될 것으로 본다. 둘째, 각국이 분주히 노력하겠지만 세계 자유무역제도의 복원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트럼프는 WTO가 상징하는 80년 연륜의 세계 자유무역제도를 높은 관세로 압축되는 보호무역제도로 단숨에 바꾸어 버렸다. 중국, EU 등 적지 않은 나라가 트럼프를 학습해 보호무역정책을 앞다투어 시행하고 있다. 세계 강국들의 자국 중심 정책의 민낯을 본 셈이다. 좌초 상태의 자유무역제도가 다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2차 대전 이후 출범한 브레턴우즈 협상을 뛰어넘는 대대적인 제2의 브레턴우즈 체제 설립을 위한 국제적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결실을 맺기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우리가 트럼프를 비난하지만 타산지석의 교훈을 잊는 경우가 있다. 첫째, 트럼프식 잘못을 우리도 하는 경우이다. 트럼프같이 정치로 경제를 좌우하는 상황이 국내에서도 나타난다. 변죽만 울리다가 끝난 것 같아서 천만다행이지만 뜬금없는 반도체단지의 새만금 투자 이전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통상적으로 기업들은 연관 산업 및 인프라와 시장 등을 고려하여 최적의 장소에 투자를 결정한다. 정치적 압박을 피하기 위해서 또는 인센티브를 계산하여 투자하는 기업들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 결과는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적으로 기업 생태계가 조성되는 클러스터링은 협력기업들이 모여 긍정적 시너지 효과를 만든다. 가장 친근한 사례가 미국의 실리콘밸리이다. 실리콘밸리에는 IT 기업들이 모여 세계를 이끄는 미래 기술을 만들어 왔다. 구글은 고전적인 사례의 하나지만 AI의 핵심기업인 젠슨 황의 엔비디아, 전기자동차의 대명사인 테슬라도 실리콘밸리에서 태어났다. 정치적 압박이나 정부의 인센티브도 없었지만 실리콘밸리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세계 테크놀로지의 온상으로 자리 잡았다.
 
정치가 기업을 좌우하려 한 시도들은 명백한 실패를 제외하고는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얼마만큼 더 좋았을 것이다'라는 식의 가정법으로 차이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른 뒤에 제대로 안 되었더라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트럼프가 퇴임 후에 잘못된 관세정책과 각국에 대한 강압적 투자결정에 대해 책임질 리가 없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사례들이 없을까. 2000년대 초 한국에 투자를 탐색하던 다국적 제약회사 G사는 한국 대신 싱가포르 투자를 선택한다. G사가 싱가포르로 방향을 돌린 까닭은 다른 고려사항도 있었겠지만 당시 한국 정치권이 G사가 모색하던 수도권 입지 대신 백신 원료의 생산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지방 투자를 강권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후문이다. G사가 한국에 투자했다면 백신 생산 기술 이전 등에 있어서 한국에 큰 이득이 되었을 것이다. G사의 한국 투자 포기에 대해서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기업이 경제적 요인을 고려한 결정을 정치적 요인으로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는 소중한 교훈을 남겼다.
 
어렵사리 버텨 온 작년도 한국 경제의 최대 공로는 반도체이다. 지금 국내 증시 불장을 이끄는 주인공도 반도체이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인 스펜스 교수가 말했듯이 한국의 반도체가 언제까지 세계 반도체의 주연으로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용인 등에 진행되고 있는 반도체 신규 투자에 차질이 생긴다면 한국 반도체의 미래 운명이 더욱 짧아질 우려가 있다. 한국의 반도체 회사들이 과거 외국의 G사처럼 별 부담 없이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예컨대 미국의 대미 투자 압박에 맞추어 대미 투자로 방향을 돌릴 가능성도 있다.
 
둘째, 다른 나라들의 좋은 정책을 배우지 못하는 경우이다. 그중에서도 규제가 가장 큰 문제이다. IMF는 통합시장 EU의 회원국 간 이동을 제한하는 각종 규제가 상품의 경우 44%, 서비스는 110%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였다. EU 국가들이 트럼프의 높은 관세를 비난하지만 스스로가 만든 EU 회원국 간 규제가 만들어 내는 준관세(quasi-tariff)도 미국의 관세 못지않게 매우 높다는 점이다. 독일과 이탈리아 등 EU 국가들은 강력한 규제 완화를 위한 공동제안서를 추진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의 규제는 어떨까. 규제의 크기를 관세처럼 퍼센티지로 나타내기는 어렵지만 프레이저 연구소(Fraser Institute)가 발표한 2025년 세계 경제자유 보고서(Economic Freedom of the World·EFW)에서 2023년 한국 규제점수는 10점 만점에 7.07로 전체 165개국 중 38등을 기록하고 있고 평가점수는 최근 몇 년간 나아지지 않고 있다. 특히 노동규제 점수는 3.87로 매우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주 현대차 공장에서 아틀라스라는 로봇이 수년 내에 사용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노조는 반대의사를 천명하고 있다. 기업의 성장에 소중한 역할을 해 온 근로자들이지만 국제경쟁의 현장에서 이와 같은 노조의 요구는 재고되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중국이나 다른 경쟁국들이 산업현장에 각종 AI 로봇을 투입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국제경쟁력 저하와 기업의 생존 자체가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지만 에너지의 지산지소는 과한 경우에 규제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농산물의 지역 내 소비를 장려한다는 취지의 지산지소 의미가 왜곡되면 도시 사람들은 농산물을 얻을 수가 없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기업을 유치하고 살리기 위해서 땅을 내어주고 규제를 없애주는 나라들도 있고 우리 또한 그러한 노력을 하고 있다. 고육지책으로 출발한 균형발전 정책은 큰 정치적 상상력에 기초하고 있고 그 지향점이 좋지만 평가는 갈리고 있다. 그 정책이나마 있었기에 이 정도라도 지방이 유지되고 있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연관 효과가 제한되고 생산성 파급효과가 작은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은 해당 지역에 기대했던 만큼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공공기관들과 달리 민간 기업들은 국제 경쟁의 성적표가 나온다. 당장은 정부가 정책을 바꾸어서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지만 시장의 학기말 성적표는 기대와는 다를 수가 있다. 시장은 정치적 의도보다 경제적 합리성이 작동할 때 가장 좋은 결과를 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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