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두 번째 '전간기'의 끝은 어딜까?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20세기 인류 역사에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2차 대전의 발생이었고 이 전쟁의 결과 미국 중심의 패권체제, 즉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탄생하였다. 현재 이 체제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손에 의해 강제 해체당하고 있는 충격과 소음이 국제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 80년간을 지탱해 온 이 질서가 해체되고 나면 어떤 질서가 들어설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힘들다. 정말 국제사회는 암흑과 혼돈의 낭떠러지로 향해 나아가는 고장 난 버스와 같다.
 
현시점에서 우리가 ‘역사는 반복하지는 않지만 변주한다’는 영국 비평가 마크 트웨인의 격언을 떠올린다면 우리는 1세기 전의 국제사회의 상황을 주목해서 보아야 한다. 1세기 전 상황이란 1차 대전이 끝나고 2차 대전이 발발하기까지 20년, 즉 역사학자 E.H. Carr가 말한 ‘위기의 20년’을 말한다. 이 시기는 1차 대전과 2차 대전 간의 짧은 기간이기 때문에 ‘전간기(inter-war period)’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기간은 짧은 평화의 시기였지만 위기가 중첩되어 결국 2차 대전이 터지게 되는 혼돈의 시기였다.
 
이 20년 동안 국제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이 지금 일어나는 일들과 유사성이 많기에 우리는 이 두 시기의 유사점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이 20년의 위기 결과 2차 대전이 발발하고 원자탄의 사용으로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상기하면 우리는 이 기간을 잘 분석하여 앞으로 닥칠 비극을 예방하는데 진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전간기의 가장 큰 특징은 국제질서를 담당할 책임국가, 즉 패권국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시기를 ‘궐위의 시대’라고 하는데 지금도 미국이 국제책임을 방기하기 시작함으로써 ‘G-0’의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당시는 1차 대전으로 영국의 패권이 몰락하고 미국이 최강국으로 등극하면서 새로운 국제체제인 ‘국제연맹’의 설립을 주도하였다. 그 후 미국이 연맹 가입을 거부함으로써 국제사회는 질서 유지를 책임질 국가가 없이 표류하게 되었다.
 
당시 각국에서 점증하는 민족주의가 국가 간 충돌을 부추기기 시작하였는데 지금도 이와 비슷한 우경화 현상이 강해지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는 물론이고 각국에서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스토롱맨’들이 집권하는 추세가 늘고 있다. 국제질서를 책임 질 국가가 없으니 각국은 각자도생을 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자국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강경 우파들이 지지를 받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전간기에 독일과 이태리, 일본에서 군국주의, 즉 파시즘이 득세하면서 약소국 영토를 침범하는 사례가 잦아지다 결국 2차 대전이 발발하였다. 지금도 러.우 전쟁이 지속되고 있고 미국, 중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국방비를 대폭 증액하면서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게다가 비확산체제(NPT)와 핵군축의 고삐도 풀리면서 핵군비 경쟁마저 가열되고 있다.
 
‘전간기’ 국제사회는 사실상 미국과 독일 간의 패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시기였다. 과거 패권국이었던 영국은 미국의 도움으로 패전은 면하였으나 패권은 내려놓게 되었다. 그 이후 미국과 독일 간의 패권 대결이 진행되었는데 독일은 2차 대전에서 미국에 패하여 유럽에서 패권 장악에 실패하였다. 지금 국제사회에서는 미국과 중국간에 패권경쟁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 양국 둘 다 트럼프와 시진핑이라는 스토롱맨들이 집권하여 앞으로 양국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역사상 강대국간 패권경쟁에 대한 하버드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16번의 주요 경쟁 중 14번이 전쟁으로 끝이 났다. 이번 미.중 경쟁은 전간기 미.독 경쟁과 다르게 평화적으로 결말이 날 지 의문스럽다.

‘전간기’시대에 국제경제는 2차 산업혁명의 불이 붙어 각국의 공업생산력이 급증하면서 전 세계적인 공급과잉이 큰 문제가 되었다. 각국이 공격적 수출정책을 취하자 이에 대응해 많은 국가들이 보호무역 정책을 취하기 시작했다. 최대 공업국인 미국마저도 ‘스무트-홀리 법안’을 통과시켜 보호주의 장벽을 높게 쌓기 시작했다. 이로써 각국은 ‘근린 궁핍화 정책’ 즉 이웃 나라를 보호무역으로 가난하게 만드는 정책을 취하였고 그 결과 대공황을 초래하였다. 지금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한 세기 전의 미국 보호주의 입법을 상기시킨다. 또한 중국의 엄청난 과잉 생산력은 세계적 대공황을 불러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전간기’에는 국제 협조주의가 실종되면서 전쟁으로 가는 길을 열어놓았다. 당시 ‘국제연맹’ 설립으로 국가간 분쟁을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 해결하자고 했으나 군국주의 국가들이 이를 무시함으로써 협조체제가 붕괴되고 전쟁이 잉태되었다. 지금도 미국이 66개 국제기구에서 탈퇴함으로써 한 세기 전 미국이 국제연맹에 가입을 거부한 것과 같은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행동 판단 기준은 국제법이 아니라 자신의 도덕성’이란 발언을 함으로써 미국의 행동을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최강국인 미국이 이런 자의적인 행태를 보이면 다른 국가들도 이를 모방할 것이고 이는 국제 협조주의, 다자주의의 붕괴를 초래한다.
 
이러면 규범에 입각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사라지고 국제사회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홉즈적 사회가 된다. 그 결과 강대국간 세력균형에 의거해서 질서를 지킬 수 밖에 없게 되고 결국 지정학적 고려가 중요해지는 ‘지정학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이미 미국이 돈로주의에 입각하여 파나마와 그린란드를 자국의 통제하에 두겠다 는 것은 세력균형의 개념이 작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력균형 체제는 강대국 간 협조체제가 유지된다면 어느 정도 평화를 보장해 줄 수도 있으나 강대국들이 경쟁 관계에 들어가면 오히려 전쟁을 촉발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래서 1차 대전 이후 ‘국제연맹’을 만들어 세력균형 정책을 버리려 하였으나 2차 대전을 막을 수는 없었다. 미·중 간 경쟁이 양국간 ‘천하 양분’이라는 대타협으로 막을 내리지 않는 한 트럼프 대통령이 소환한 세력균형 개념은 오히려 전쟁의 불꽃을 더 쉽게 만들 수 있다. 1차 대전이 발발할 때 독일은 영국이 대륙 전쟁에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 오판했다. 그러나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하자 영국은 참전하였다. 독일은 백년 전 벨기에와 맺은 조약 때문에 영국이 참전하는 것은 ‘종이 한 장 때문에 전쟁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영국은 벨기에 침공은 세력균형을 파괴하고 영국의 위신을 실추시키기에 참전한다고 반박했다. 지금 대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중 간의 알력도 세력균형 관점에서는 양쪽 모두 포기할 수 없기에 다음 전쟁의 발화점이 될 수 있다.
 
여러 측면에서 지금은 한 세기 전의 ‘전간기’와 닮은 꼴로 가고 있다. 역사가 변주하면서 반복한다면 이런 추세의 막다른 길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3차 대전이 될 수도 있다. 한 세기 전과 다른 점은 양 대전 간의 ‘전간기’가 20년으로 아주 짧았다는 점이고 지금은 2차 대전 이후 가장 긴 평화의 기간을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이 긴 평화도 오히려 전쟁의 참화에 대한 기억을 지워 전쟁 가능성을 더 키울 수 있기에 걱정스럽다.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은 ‘인류가 역사에서 배우지 않기에 반복 학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라는 냉소적인 말이 있다. 이 냉소가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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