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 아주대 아주통일연구소 교수(연구실장)]
지난주 수요일, 알렉산드로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국가수반으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중동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지금 북한은 왜 6500㎞ 이상 떨어진 동유럽 국가의 정상을 평양으로 초대했을까? 이미 4년째 지속 중인 러-우 전쟁은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도화선이 되었다. 이 거대한 지각변동 속에서 북한은 기민하게 움직이며 생존의 틈을 벌리고 있다. 북한은 러-우 전쟁에 이어 중동 사태 또한 국가 운신의 폭을 넓히는 기회의 창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의 유럽 및 동맹국가들은 이미 끝이 보이지 않는 러-우 전쟁에 지쳐있다. 각 나라마다 이미 관세라는 대미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는 입장에서 미·이스라엘이 촉발한 참전 명분마저 약한 중동 사태에 연루되고 싶지 않은 표정이 역력하다.
시간은 미국 편이 아니다. 미 워싱턴 D.C 기반 언론인 샤르벨 안툰은 지난 25일, 정치전문매체
북한은 최근 중동 사태에 대해 “불법무도한 침략 행위”이자 “가장 추악한 주권 침해”로 규정했는데 그간 중동 문제에 관해서는 미국에게 비난의 화살을 집중해왔다. 2023년 이-하마스 간 무력 충돌 사태를 두고 “중동사태의 장본인은 미국”이라는 논평을 조선중앙통신(10.23)에 게재하는가 하면, 2025년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당시에는 엿새 만에 미·이스라엘을 향해 “전쟁의 불길을 부채질한다”고 비난성명(6.19)을 낸 바 있다. 미군에 의해 체포된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과 미·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한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이었던 라리자니의 최후는 북한에게 2017년 당시 트럼프 發 ‘화염과 분노’를 상기시켰을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이제 지구상에 북한이 핵을 포기할 거라고 믿는 국가는 없다.
벨라루스는 루카셴코 대통령 이후 친러정책을 표방하고 있으며 러-우 전쟁에 관해 군사기지를 공유하며 러시아측의 입장을 철저히 대변해온 국가이다. 북한과는 1992년 수교를 맺었으나 북한이 민스크 지역에 대사(주정봉)를 파견한 것은 2019년에서의 일이다. 벨라루스 정부는 그간 유엔의 대북제재 이행조치로 2016년 대북제재 위반 계좌를 동결하고 2017년 12월에는 북한 정찰총국 요원을 출국 조치하는 등 국제사회의 규율을 나름 준수해왔기에 양국 간 의미있는 외교관계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다만 러-우 전쟁 이후 2024년 우간다에서 열린 제19차 비동맹운동 정상회의 기간 양국의 외교수장(최선희-리젠코프)이 만나 양자 협력의 심화를 모색했고 이들은 2025년 7월 북한과 10월 벨라루스를 오가며 관계 강화를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인 계기는 같은 해 9월 중국의 전승절 기간이었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루카셴코 대통령을 만난 것이 올해 2월 대북제재 금지 품목까지 수출하는 관계로 진전되었다. 양국 간 우호협력조약에 군사협력은 포함되지 않았으나, 다극화세계질서 구축과 반서방 기조에 관한 공동 입장과 정치·경제·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루카셴코 대통령이 북-소 혈맹을 상징하는 평양의 해방탑을 찾아 헌화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러시아를 고리로 형성된 두 친러국 간의 전례없는 밀착에서 북한이 동유럽과 중동을 벨트로, 반서방 연대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능동적·전략적 의지 표명으로 평가할 수 있다.
벨라루스 대통령의 이번 방북은 지난달 막을 내린 제9차 당 대회의 연속선 상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다. 북한은 지난 2월과 3월 개최된 노동당 제9차 대회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에 종언을 고하고, 자신들만의 ‘다극화 질서’를 구축하겠다는 공세적인 외교 전략을 선언하였다. 집권 체제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향후 5년간의 대외 정책 노선을 확정 짓는 분기점인 이번 당 대회에서 김 위원장은 사업총화 보고를 통해 지난 5년을 러-우 전쟁 등 세계 정치 구도의 변화에 참여하며 “국가 지위를 불가역적으로 굳건히 다진 성공적 기간”으로 자평했다. 한국에 대해선 “가장 적대적인 국가”이자 “철저히 배척해야 할 대상”으로 냉담히 재정의하며, 군사적 대응 기준도 완전히 달리하겠다고 선언했다. ‘민족’과 ‘통일’이라는 수사를 폐기하고, 한반도 문제를 국가 간의 국제적 분쟁으로 규정하여 다극화된 세계 질서의 일부로 편입시키려는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이는 헌법 개정 조문이 미공개되었을 뿐, 3월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5기 1차 회의 중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에서도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인”하며 “명백한 언사와 행동으로 배척하겠다”는 의지로 재확인되었다. 대남 절연은 자연스레 국경 밖으로 시선을 옮기게 하는데 공교롭게도 현재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인 이란과 벨라루스가 중·러 주도의 반서방 안보·경제 블록인 상하이협력기구(SCO)의 9~10번째 가입국인 것이 눈에 띈다. 대외 활로를 모색 중인 북한의 벤치마킹 대상으로는 적격인 셈이다.
눈여겨볼 것은 지난 19일 벨라루스 루카셴코 대통령과 존 코얼 트럼프 대통령 특사 간의 민스크 회담이다. 다음날 미국의 벨라루스 금융기관 등 제재 완화 약속에 따라 정치범 250명을 석방했다고 알려졌는데 궁극적으로는 미국과 정상회담을 통해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로 볼 때 북한과 닮은 꼴이기도 하다. 향후 벨라루스가 북·미관계의 중재자로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지만 현재로서는 다소 섣부른 기대에 가깝다.
북한이 다극화 질서를 지렛대 삼아 동유럽과 중동을 잇는 공세적 연대를 구축함에 따라, 우리의 대응 전략 역시 입체적이고 정밀해질 필요가 있다. 북한과 우호 국가들은 대부분 우리와도 수교관계를 맺고 있기에 최근 한-쿠바·시리아 수교사례와 같이 신장된 외교역량을 활용하여 공식 비공식 채널을 통한 제2의 북방외교를 추진하며 북한의 진영화 전략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 국제 정세의 급변 속에서 한반도 상황이 통제 불능에 빠지지 않도록 복합적인 안보·외교 전략을 수립하고 관리해나갈 힘은 오로지 당사국의 능동적·주체적 사고로부터 나온다.
한기호 필자 주요 이력
▷아주대 아주통일연구소 교수(연구실장) ▷연세대 통일학 박사 ▷통일부 과장(서기관) ▷(사)북한연구학회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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