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약속은 해마다 반복된다. 법을 만들고 제도를 손질할 때마다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소비자 중심”을 외친다. 그러나 현장에서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보이스피싱과 불법 사금융 피해는 줄지 않고 금융사고는 되풀이된다. 말은 넘치지만 결과는 없다. 선언만 있고 실행은 없다면, 그것은 정책이 아니라 형식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소비자의 불신만 키울 뿐이다.
보이스피싱은 그 민낯을 가장 잘 보여준다. 범죄 수법은 기술 발전과 함께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가짜 앱과 기관 사칭, 대출빙자 사기까지 수법은 이미 일상 깊숙이 들어왔다. 그런데 대응은 여전히 뒤쫓기식이다. 피해가 발생한 뒤에야 경고가 나오고 대책이 발표된다. 이 정도면 대응이 아니라 방치다. 사전 차단이 작동하지 않는 한 피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미 충분히 예측 가능한 범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을 비롯해 각종 규제와 내부통제 장치가 이미 마련돼 있다. 그럼에도 사고가 반복된다면 결론은 하나다.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제도가 있으나 작동하지 않는다면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서류상 장치로는 소비자를 보호할 수 없다. 형식적 준수만으로는 실질적 보호를 기대하기 어렵다.
금융당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제도를 도입했다고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제도는 감독 실패다. 그동안의 대응은 사전 예방보다 사후 수습에 가까웠다. 사고가 터진 뒤에야 점검을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사후 대응에 머문 감독은 실패한 감독이다. 감독의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제도 역시 신뢰를 얻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책임이 흐려진다는 점이다. 사고가 나면 금융사는 일부 사례로 축소하고, 당국은 개별 문제로 선을 긋는다. 그러는 사이 소비자만 피해를 떠안는다. 책임이 분산된 구조에서는 개선도 없다. 책임이 없으면 변화도 없다.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시스템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금융소비자 보호는 선택이 아니다. 금융 신뢰를 지탱하는 최소 조건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금융 시스템도 흔들린다. 그런데도 이를 비용으로 미루는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소비자 보호를 비용으로 보는 금융사는 결국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예방보다 사후 비용이 더 크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대책이 아니다. 이미 있는 제도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일이다. 사전 차단을 강화하고, 내부 평가와 보상 체계를 소비자 보호 중심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어떤 대책도 공허하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결과도 바뀌지 않는다. 실행 없는 대책은 또 하나의 형식에 그칠 뿐이다.
금융소비자 보호는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결과로 입증돼야 한다. 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한 지금의 시스템은 실패다. 더 늦기 전에 바로잡지 않으면 신뢰는 회복하기 어렵다. 답은 분명하다. 또 다른 구호가 아니라 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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