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컬럼] 구윤철의 제안, IMF는 설계자로 바뀌고 한국은 IMF를 넘어서야 한다

 세계 경제의 흐름이 다시 거칠어지고 있다. 전쟁은 끝날 기미가 없고 관세 장벽은 높아지고 있다. 공급망은 효율이 아니라 안보의 문제로 바뀌었다. 여기에 인공지능을 둘러싼 기술 경쟁까지 겹쳤다. 위기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동시에 온다. 과거처럼 한 번의 충격과 회복으로 설명할 수 있는 국면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기구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단순한 진단과 권고만으로는 세계 경제를 지탱하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구윤철 부총리가 국제통화기금(IMF)를 향해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IMF는 더 이상 위기의 해설자가 아니라 협력의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IMF의 기능을 바꾸라는 요구이자 지금의 세계 경제 구조에 대한 진단이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중인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7일현지시간 IMF에서 크리스탈리나 오르기에바 총재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중인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7일(현지시간) IMF에서 크리스탈리나 오르기에바 총재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IMF는 오랫동안 위기 뒤에 등장했다. 상황을 분석하고 조건을 제시했다. 긴축과 구조조정이 핵심이었다. 이 방식은 일정한 효과를 냈다. 한국의 1997년 외환위기가 대표적이다. IMF는 외환 유동성을 공급했고 시장 신뢰를 회복시켰다. 한국 경제는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외환시장은 정상화됐고 금융 시스템도 재정비됐다. 여기까지는 분명한 성과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일자리는 급격히 줄었고 기업은 무너졌다. 중산층이 흔들렸다. 사회 전체가 큰 충격을 겪었다. 한국은 제조업 경쟁력과 인적 자본을 바탕으로 버텨냈다. 하지만 그 비용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더 중요한 점은 같은 처방이 모든 나라에서 같은 결과를 낳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르헨티나는 IMF 프로그램 이후에도 채무 위기를 반복했다. 긴축과 구조조정이 경제 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리스 역시 강도 높은 긴축 속에서 장기 침체를 겪었다. 재정은 정리됐지만 성장 동력은 살아나지 못했다. 이 사례들은 IMF의 방식이 위기를 ‘막는 데’는 효과가 있었지만 회복의 질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경험은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IMF는 위기를 진정시키는 데 기여했지만 그 과정에서의 사회적 비용까지 줄이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이 한계가 IMF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지금도 그 기억은 남아 있다. IMF는 위기의 상징이자 동시에 고통의 상징으로 인식된다.


문제는 지금의 세계 경제가 당시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데 있다. 지정학적 갈등은 상수로 자리 잡았고 공급망은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기술 경쟁은 기업을 넘어 국가 전략의 중심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처럼 획일적인 처방을 반복하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국가마다 상황이 다르고 이해관계도 다르기 때문이다.


구윤철 부총리가 말한 ‘설계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 개념이다. 설계자는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 다른 조건을 조정하고 이해를 연결한다. 각국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틀을 만든다. IMF가 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가능하냐는 질문이 남는다. 지금 세계는 협력보다 경쟁이 앞선다. 미국과 중국은 기술과 공급망을 둘러싸고 충돌하고 있고 유럽 역시 자국 중심의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간 이해를 조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강제가 아니라 유인이다.


IMF는 금융 자원을 가진 기관이다. 이 자원을 협력을 끌어내는 수단으로 써야 한다. 공급망 안정이나 기후 대응, 기술 협력에 참여하는 국가에 더 유리한 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참여할수록 이익이 커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국가 간 협력이 현실적인 선택이 된다.


정책 접근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과거 IMF는 재정 건전성과 긴축을 중심에 두었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는 단순한 긴축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위기 때는 재정을 써야 한다. 충격을 막기 위해서다. 이후에는 재정을 정리해야 한다. 시간의 순서를 나누는 방식이다. 단기 대응과 중기 건전성 회복을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은 이 방식을 실제로 보여줬다. 대규모 재정 지출을 통해 위기를 막고 동시에 산업 투자를 통해 성장 기반을 만들었다. 재정은 억제의 대상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운용할 수단이라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구윤철 부총리가 인공지능 전환과 취약국 지원을 함께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AI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지만 국가 간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 IMF가 설계자로 기능하려면 이런 격차 문제까지 다뤄야 한다. 금융 안정에 머무르면 역할은 제한된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점이 있다. IMF의 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국 스스로의 준비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IMF를 경험한 나라다. 위기를 극복했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도 알고 있다. 같은 상황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지금의 환경은 더 위험하다. 전쟁과 공급망, 기술 경쟁이 동시에 흔들리면 충격은 훨씬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 지원에 의존하는 구조는 위험하다. IMF 굴욕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내부 체력을 키워야 한다.


핵심은 분명하다. 재정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 위기 때 쓸 수 있는 힘을 남겨둬야 한다. 산업 경쟁력을 지켜야 한다. 반도체와 배터리, 콘텐츠 같은 핵심 산업은 경제의 버팀목이다. 외환과 금융 시장의 안정성도 중요하다. 이 세 가지가 흔들리면 어떤 제도도 버티기 어렵다.


한국은 이미 한 번의 위기를 겪었다. 그리고 그 위기를 이겨냈다. 그러나 그것이 반복될 수 있는 모델이라는 보장은 없다. 세계 경제는 그때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대응도 더 정교해야 한다.


결국 답은 두 가지다. IMF는 설계자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은 IMF에 의존하지 않을 준비를 해야 한다. 외부의 설계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국가로 올라서야 한다.


구윤철의 발언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던졌다. 국제 질서의 변화와 국가의 준비를 함께 요구한 것이다. 세계 경제는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남은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그 변화에 맞게 준비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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