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를 찾고, 초안을 쓰고, 막힌 부분을 푸는 과정이 놀랄 만큼 가벼워졌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조사에서 대학생 열에 아홉이 과제에 AI를 쓴다고 답한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학습은 분명히 '쉬워졌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좀처럼 묻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학습이 쉬워진 것과 학습이 좋아진 것은 같은 말인가.
스스로 떠올리고, 틀리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의 어려움은 제거해야 할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성장의 조건이다.
그런데 생성형 AI의 매끄러운 응답은 바로 그 '바람직한 어려움'을 소리 없이 건너뛰게 만든다. 학생이 인출하고 생성하며 의미를 구성할 기회를 얻기도 전에 완성된 답이 먼저 도착하기 때문이다.
유창한 답을 받아든 학생은 '이해했다'고 느끼지만 그 느낌과 실제 이해 사이의 간극은 점점 벌어진다.
문제의 핵심은 AI를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이미 학생들은 AI를 쓰고 있고 그 자체를 막을 수도 막을 이유도 없다.
진짜 관건은 그 쉬움이 '어떤 조건에서' 성장으로 이어지고 '어떤 조건에서' 사고의 위임으로 미끄러지는가를 가려내는 일이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교육 현장은 무비판적 도입과 과도한 금지 사이에서 표류한다. 전자는 의존을 키우고, 후자는 잠재력을 닫는다.
그동안 디지털 교육의 품질은 대체로 '학습자 만족도'로 측정돼 왔다. 쓰기 편하고 만족스러우면 좋은 콘텐츠라는 식이다. 만족은 측정하기 쉽고 비교하기도 좋다.
그러나 만족이 곧 배움의 증거는 아니다. 어렵게 배운 것이 오래 남고 더 잘 전이된다는 사실은 수많은 연구가 일관되게 보여 준다.
노력의 절감이 곧 만족의 상승으로 직결되는 생성형 AI 환경에서 만족도만 좇는 평가는 '쉬운 AI 교육'을 '좋은 AI 교육'으로 오인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좋은 AI 교육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가 아니라 'AI라는 조건 속에서도 교육이 그 본질을 지키는가'의 문제이다.
교육철학자 비에스타(Biesta)는 좋은 교육이 자격 부여와 사회화, 그리고 주체화—학습자가 스스로 사고하는 주체로 서는 일—사이의 균형 위에서 성립한다고 했다.
생성형 AI 시대에 가장 위태로운 것이 바로 이 주체화다. 그래서 좋은 AI 교육의 중심축은 학습자가 사고의 주체로 남는가에 있다.
교육 목적이 정당한가, 교수자가 AI의 역할을 주도적으로 판단하는가, 학습자가 사고의 주체로 형성되는가, AI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는가, 그리고 학습이 개인을 넘어 사회적 책임으로 이어지는가. 흥미롭게도 전문가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 것은 화려한 기술 활용 역량이 아니라 바로 '학습자 주체성'이었다.
여기서 교수자의 역할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어떤 활동에 AI를 적극 권하고 어떤 활동에서는 의도적으로 배제할 것인가. 이 판단이야말로 좋은 AI 교육의 출발점이다.
좋은 교육은 'AI와 함께하는 자유'와 'AI로부터의 자유'를 동시에 보장한다. 학생이 AI의 도움으로 더 멀리 나아갈 자유와, 스스로 사고하기 위해 AI를 잠시 내려놓을 자유는 모순되지 않는다.
그 균형을 설계하는 사람이 교수자다. AI 시대에 교사의 전문성은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대학의 평가 기준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 만족도와 이용률이라는 손쉬운 지표만으로 교육의 질을 판단하는 한 교육적으로 더 깊은 설계는 늘 불리해진다.
학생이 무엇에 만족했는가를 넘어 무엇을 스스로 사유하고 어떻게 성장했는가를 함께 묻는 평가로 나아가야 한다.
생성형 AI는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변수가 아니다. 그것은 교육의 본질이 실현되기도, 좌절되기도 하는 새로운 '조건'이다.
학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쉽게 답을 얻게 됐다. 그러나 바로 그 쉬움이 사유와 성장을 비켜 가게 할 수 있다는 역설 앞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AI를 잘 다루는 법을 가르칠 것인가, 아니면 AI 앞에서도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을 길러낼 것인가. 좋은 AI 교육은 후자의 편에 서는 일이다.
백송이
고려대학교 교육공학 박사
숭의여자대학교 대학혁신센터 연구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연구원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
고려대학교 교육정책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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