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규모가 91조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신규 투자보다 자금 조달 부담 대응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하반기 기준금리까지 상승할 경우 이자 부담이 급증하며 투자 위축과 고용 둔화, 나아가 금융시장 전반의 불안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기준 올해 회사채 만기 도래 규모는 총 91조226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 수준으로 전년(78조8967억원)보다 12조3295억원 증가한 규모다. 특히 상반기 만기 도래액이 57조8962억원으로 전체의 63.4%를 차지해 상환 부담이 연초부터 집중되는 구조다.
만기 물량의 상당수는 2020~2021년 연 1~2%대 초저금리 환경에서 발행된 회사채다. 당시 기업들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대규모로 채권을 발행했지만 이후 기준금리 인상과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시장 환경이 급변했다. 이에 따라 당시 발행한 채권을 훨씬 높은 금리로 차환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최근에는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기조가 사실상 종료된 가운데 추가경정예산 편성 가능성, 일본 국채 금리 급등 등 대외 변수까지 겹치며 금리 상방 압력이 다시 커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기준 AA- 등급 회사채 3년물 금리는 4.197%, BBB- 등급은 9.979%까지 상승했다.
문제는 이러한 금리 환경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하반기 중 한은이 기준금리를 1~2차례 인상할 수 있다는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이 경우 기업들의 차환 금리는 더 높아지며 이자 부담이 한층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금리 상승과 자금 조달 여건 악화가 맞물리면서 기업들은 신규 투자보다 단기 유동성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운전자금 수요 증가는 기업들이 확장보다 생존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자 부담이 확대되면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는 중장기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여기에 신규 채용 축소와 성과급 감소까지 겹치면 가계 소득과 소비 여력도 함께 위축되는 악순환이 우려된다.
특히 이 같은 부담은 중견·중소기업에 더 크게 작용할 전망이다. 대기업은 보유 현금과 높은 신용도를 바탕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차환이 가능하지만, BBB급 이하 저신용 기업이나 중견·중소기업은 자금 조달 자체가 어려워지는 ‘신용 경색’에 직면할 수 있다. 차환 실패나 조달 금리 급등이 현실화될 경우 일부 기업은 유동성 위기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정책 변수까지 더해지며 기업들의 부담은 한층 커지고 있다. 정부가 주주환원 확대를 유도하는 가운데 기업들은 이자 상환 부담과 배당·자사주 매입 압박을 동시에 안고 있다. 이에 따라 재무 건전성과 주주환원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정책적 딜레마도 부각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금리 경로에 따라 기업 부채 문제가 경기 전반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특히 하반기 금리 인상이 현실화될 경우 기업들의 이자 부담은 투자·고용·소비를 동시에 위축시키는 복합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화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신용 기업일수록 수익성과 재무 건전성 악화 시 이자 비용이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며 “정책 당국은 취약 기업의 자금 조달 여건을 면밀히 점검하고 시장 불안에 적시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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