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바다숲, 이름을 더하다

황종우 해양수산부 장관 사진해양수산부
황종우 해양수산부 장관 [사진=해양수산부]
"저는 이름을 지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름이 없으면 얼마나 외롭겠어요! 저는 벌써 '보니'라고 이름 지었어요. 이제 이 제라늄을 '보니'라고 부를 거예요."
 
소설 '빨간 머리 앤'에서 앤이 초록지붕 집 창가의 제라늄 화초에 이름을 붙여주며 한 말이다. '보니'라는 이름이 생긴 순간 수많은 식물 중 하나가 아니라 특별한 존재가 된다. 이름을 지어 부른다는 것은 마음을 나누고 살피고 동행하겠다는 다정한 다짐인 셈이다.
 
지금 우리 바닷속에도 누군가의 다정한 부름을 기다리는 수많은 '제라늄'이 살고 있다. 바로 '바다숲'이다. 바다숲은 다시마, 감태, 미역 등 해조류가 군락을 이루며 다양한 해양생물들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해양생물의 먹이원이자 산란·서식장이 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뿜어내며 해양 환경을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해양수산부는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시 면적 절반이 넘는 375㎢의 바다숲을 조성했다. 바다숲이란 바닷가 연안 중에서 햇빛이 당도하는 수심에서 다채로운 해조류들이 바다 속에서 숲을 조성한 것처럼 무리지어 성장한 모습을 육지의 숲에 비유해 지칭하는 용어다. 대형 식물이 모여 있는 바다숲에는 어류가 삶의 터전을 꾸려 산란장, 새끼 고기의 보육장으로 활용한다. 이전에는 해조장, 해조숲, 해조밭 등으로 불렸으나 최근에는 '바다숲'으로 순화해 사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해양수산부가 조성해온 바다숲은 연간 12만7000톤, 자동차 5만2000대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규모다. 2022년부터 시작해 2025년에 조성이 완료된 여수시, 포항시 등 17개 해역의 바다숲에서는 해양생태계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종다양성 지수가 조성 전보다 64.1% 증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바다숲들은 '동해시 묵호 바다숲' '제주시 애월리 바다숲' 등 행정구역 명칭으로 사업실적 보고서에 좌표로만 기록되어 왔다. 설악산이나 지리산처럼 이름만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내며 보호를 받아온 육지의 숲과는 대조적이다.

이름이 있기에 우리는 그곳을 기억하고 찾아가며 정성을 다해 가꾼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때론 무관심의 이유가 된다. 보고서에 좌표로 관리되는 바다숲은 조성 이후 우리 기억 속에서 쉽게 잊히곤 한다. 하지만 앤이 꽃들의 안부를 묻듯이 바다숲에 고유한 이름이 생기는 순간 우리 마음은 바다 깊은 곳에 머무르게 된다.
 
이에 해양수산부는 바다숲 조성에 참여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한국수산자원공단과 함께 바다숲에 고유한 이름을 지어주는 '바다숲, 이름을 더하다'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바다숲의 존재와 가치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우리가 지속적으로 챙겨보고 관리해야 할 '반려 공간'으로 격상시키기 위함이다.
 
이름이 생기면 우리는 더 자주 그 안부를 궁금해할 것이다. "지난 풍랑에 '희망 바다숲'이 다치지는 않았을까?" "우리 '해랑이 바다숲'은 얼마나 더 풍성해졌을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구처럼 바다숲도 이름을 갖는 순간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첫 번째 이름은 울산 주전 해역에 조성된 '울림(Ullim)'이다. '울산의 새로운 숲(蔚林)'이라는 의미와 함께 바다생태계 회복을 향한 바다숲의 푸른 생명력이 거대한 울림이 되어 퍼져나가길 바라는 현대차 임직원들의 소망과 응원이 담겼다.

오는 5월 10일 '바다식목일'이 되면 '울림 바다숲'을 지도 앱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된다. 이름 없는 해조류 군락이 아니라 친구 같고 이웃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바다숲, 이름을 더하다' 프로젝트는 아르헨티나, 호주 등 글로벌 캠페인으로도 확산될 예정이다. 앞서 우리나라는 2012년 세계 최초로 매년 5월 10일을 바다식목일로 지정하고 바다 생태계 보호와 바다 사막화 위기 대응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이처럼 바다숲에 이름을 붙이는 이 작은 시도가 전 세계로 뻗어 나가 세계 곳곳의 바다숲을 가꾸고 지켜나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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