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희 칼럼] 한국 금융은 왜 이토록 잔인한가

서정희
[서정희 논설고문]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최근 SNS에 연속적으로 공개한 글이 화제다. 스스로 “나는 이 잔인한 금융시스템을 설계, 작동, 정당화해온 사람이며 명백한 공범이다”는 고백이 묘한 호소력을 발휘한 듯하다. 그러나 이 정부의 최고 정책 실세가 갑자기 다소 거칠고 도발적인 글로 세상의 여론을 두드린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해석이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네 번째 글에서 은행을 완전한 민영기업이 아닌 준공공기관이라고 밝힌 점, 이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두둔하고 나온 점을 들어 조만간 금융시스템 전반에 대한 구조 재설계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글 도입부에 시리즈를 구상하게 된 동기를 밝히기는 했다. “왜 가장 여유 있는 사람이 낮은 금리를 누리고, 가장 절박한 사람이 가장 비싼 이자를 내야 합니까.” 이재명 대통령의 반복된 질문에 처음엔 신용의 기본을 잘 모르는 질문이라 생각해 헛웃음이 났지만 한국 금융이 왜 이렇게 잔인하냐는 하문엔 웃을 수 없었다고 김 실장은 토로했다.

김 실장이 시리즈에서 밝힌 논지는 한마디로 한국 금융에 심각한 문제가 있고, 그것은 구조의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구조의 문제 한복판에 ‘신용등급이라는 불완전한 과학’이 자리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신용등급은 철저히 ‘과거’만 보고, “안정적인 궤적의 삶은 우대하지만, 거친 풍랑을 견뎌온 삶은 가차 없이 깍아내린다”고 꼬집었다. 그 결과 한국 금융은 성 안의 고신용자와 성벽 밖 금융 배제계층이 분리된, 그래서 마치 가운데만 휑하게 뚫린 커다란 도넛 같은 양극단 구조가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제도를 다시 설계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은행이 ‘회피’를 합리적 선택이라고 믿는 구조를 바꾸는 것, 낡은 신용평가의 ‘틀’을 과감히 넓힐 것, 서민금융기관의 역할을 다시 정리할 것 등 세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그의 진단과 해법에 대해 필자는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큰 틀에선 공감하지만 디테일에서는 의견을 조금 달리한다는 뜻이다.

이제 하나씩 짚어보자. 먼저 잔인한 한국 금융의 환부는 어디일까. 절실한데도 성 밖으로 밀려난 금융 소외계층이 가장 아픈 곳일 것이다. 서민금융기관이 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서둘러 손봐야 한다. 두 번째 환부는 전 금융사들이 해당되는 광범한 병변이다. 도넛처럼 뻥 뚫렸다는 중금리 영역 문제다. 이재명 대통령 지적처럼 신용대출에서 가장 낮은 금리가 15%대라는 게 말이 되나. 김 실장이 제도 재설계를 시도하려는 영역도 바로 이 부분, ‘회피’가 합리적 선택이라는 은행의 믿음을 혁파하자는 데 있는 것 같다. 옳은 환부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회피’가 합리적 선택이라는 은행의 비뚤어진 믿음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김 실장은 그 시작점으로 1997년 외환위기를 지목했다. 이전에는 은행들에 ‘준공공기관’의 성격이 짙었는데 외환위기 후 외국인 지분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이 역할이 뒤로 밀리고 자본 건전성과 수익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논리다. 수긍이 가는 지적이다. 다만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이 꼬리를 문다. 첫째는 그게 틀린 방향이었느냐는 물음이고, 두 번째는 외환위기 후 이미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 지금의 모순을 두고 30년 전 제도와 시스템에만 책임을 묻는 게 옳으냐는 물음이다.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귤화위지(橘化爲只) 고사성어의 교훈을 여기서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외환위기 후 긴 세월 동안 한국 금융은 도전과 응전을 이어왔고, 그 중심에는 외국인 지분 외에 정책당국과 감독당국 그리고 금융사 경영진이 있었다. 외환위기로 강요받은 건전성이라는 초기 환경 요인을 지금의 금리 양극화로 고착시킨 과정에는 이들의 관리 편의주의적 합의와 안주가 자리해온 것은 아닐까. 오히려 책임을 분담해야 균형 잡힌 옳은 해법이 도출되지 않을까. 이래야 김 실장이 언급한 ‘준공공기관’으로서 은행의 구조 재정립(그 방법이 무엇인지 아직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으나) 논의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중금리 영역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그동안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인터넷 뱅크 라이선스를 별도로 내준 것도 그런 취지였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실패였다. 잔인한 한국 금융을 구조의 문제로만 인식하고 제도 설계를 다시 하자는 데 흔쾌히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와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구조나 제도의 문제를 먼저 탓하면 그 운영의 문제가 뒷전으로 밀린다. 늘 그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도 다르지 않았다. ‘시장의 불완전성’이 성토되는 대신 당시 미국 등 선진국 정부와 중앙은행을 호령했던 정책 담당자들은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내놓은 해법은 제도를 더 촘촘히 설계하는 쪽이었다.
세 번째로 신용평가 틀을 보완하고 개선하자는 의견에는 당연히 동의한다. 다만 너무 부분적인 해법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시대 변화에 맞춰 신용평가 틀은 계속 손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하고 AI가 발전해도 완벽한 신용등급 제도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대출 심사에서 신용등급은 금융사의 참고용 필요조건일 뿐이며 이에 대한 최종 결정은 금융회사의 몫이고 책임이다. 제도를 촘촘히 할수록 대출 심사 역량과 유연성이 발휘될 여지는 점점 더 줄어드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

대출 위험이 어느 임계점을 기준으로 갑자기 비선형적으로 튀는 구간이 존재한다는 금융 현장의 목소리도 존중한다. 그러나 이 또한 기계적인 기존 대출 관행과 무관하지 않다. 소위 ‘도넛’ 구간을 채우는 목표는 제도 개선이나 데이터의 기계적 확대로는 도달할 수 없다. 이 역시 금융사의 심사 역량과 의지에 달려 있다는 판단이다. 정책과 감독 관행이 바뀌고 창구의 성과보상 체계(KPI)가 변해야 한다.

사실 이런 문제는 정부 예산사업도 마찬가지다. 금융이든 재정이든 이 문제를 풀 열쇠는 제도가 아니라 결국 사람이고 관행이다. 퇴계 이황 선생의 ‘견선여기출(見善如己出)’ 가훈을 파이낸스의 기본 정신으로 새길 만하다. 좋은 일(사업 아이디어)을 보고 자기 일처럼 기뻐할 수 있다면 그게 ‘준공공기관’으로서 뱅킹이 지녀야 할 공공적 마인드 아닐까. 제도가 아니라 정책당국과 감독당국이 이를 유도하는 모범 관행을 만들어야 한다. 일류 금융, 선진 금융은 참 어려운 과제이고 가야 할 길이지만 결국 사람의 일이다. 제도로만 접근하지 말었으면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국제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미국 미주리대 경제학 박사 ▷매경TV·매경출판 대표, 매일경제신문 워싱턴 특파원, 논설위원 등 ▷서울대 경제학부 객원교수  ▷연우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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