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이 모수의 '와인 논란'에 공분한 이유는 고가 와인이 잘못 제공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모두가, 이 사건에서 자신의 취약한 위치를 봤기 때문일 테다.
논란은 고객 A씨가 모수에서 샤또 레오빌 바르통 2000년 빈티지를 제공받아야 했지만 실제로는 2005년 빈티지가 서빙됐고, 이후 응대도 부적절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며 확산됐다. 안성재 셰프는 이후 사과문에서 해당 소믈리에가 2005년 빈티지를 서빙한 뒤 오류를 인지했음에도, 고객이 병 사진 촬영을 요청하자 실제 제공된 와인과 다른 2000년 빈티지 병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고가의 파인다이닝은 익숙한 소비가 아니다. 대부분의 손님은 그곳에서 음식과 와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빈티지, 생산자, 페어링의 의도, 잔의 선택, 서빙 순서까지 모두 검증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돈을 내고 전문가에게 맡긴다. 비싼 값을 치르는 이유다. 더 많이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몰라도 괜찮은 상태를 사기 위해서다.
비싼 식당을 향한 기대는 허영이 아니다. 그 가격 안에는 맛뿐 아니라 정확성, 태도, 설명 책임까지 포함돼 있다. 이번 논란이 큰 파장을 낳은 것도 이 때문이다. 손님이 전문가를 믿어야만 하는 환경에서, 그 믿음이 흔들렸다.
조직심리학에서 말하는 '심리적 계약 위반'의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심리적 계약은 법적 계약서에 적히지 않았지만 관계 안에서 당연히 지켜질 거라 기대되는 의무와 믿음이다. 고가 레스토랑에서 손님이 기대하는 것은 단지 좋은 음식이 아니다. 정확한 설명, 투명한 응대, 실수가 생겼을 때의 빠른 인정까지 포함된다.
사람들이 예민하게 본 것도 바로 그 부분이다. 와인이 잘못 제공됐는가만이 아니라, 문제가 생긴 뒤 손님이 제대로 존중받았는가. 소비자는 자신이 모르는 영역에서 약자가 된다. 병원, 법률, 금융이 그렇듯 와인도 마찬가지다. 전문가가 그렇다고 말하면 일단 믿을 수밖에 없다. 그 설명이 흔들리면 소비자는 불편을 넘어 모욕적인 감정을 느낀다. "혹시 내가 몰라서 넘어간 적이 또 있었나?"라는 질문이 생기고, 그 순간 사건은 한 테이블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이번 논란에서 대중의 감정을 움직인 건 일종의 '대리 피해감'이다. 직접 피해자는 아니지만, 피해 고객의 자리에 자신을 앉혀볼 수 있었다. 심리학에서는 타인의 부당한 피해를 목격했을 때 생기는 분노를 '공감적 분노'로, 타인이 사회적 규범을 어겼다고 느낄 때 발생하는 분노를 '도덕적 분노'로 설명한다. 큰마음 먹고 예약한 식사 자리, 잘 모르는 와인을 전문가에게 맡긴 상황, 그리고 뒤늦게 돌아온 이상한 설명… 남의 일이 내 일이 될 수 있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들의 태도는 달라진다.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는 부당함을 미리 감지한 방어적 감정으로 바뀐다.
안성재의 이미지도 이 반응을 키웠다. 그는 방송을 통해 '기준이 높은 사람'으로 각인됐다. 재료, 조리, 완성도, 태도까지 쉽게 넘기지 않는 심사위원이었다. 대중은 그 엄격함을 그의 식당 전체에까지 확장했다. 이른바 '후광효과'다.
한 영역에서 강한 신뢰가 생기면, 사람들은 다른 영역까지 좋게 평가한다. 안성재라는 이름은 단지 요리를 잘한다는 의미를 넘어섰다. 그의 공간이라면 운영도 정교할 것, 서비스도 정확할 것, 문제가 생겨도 대응이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붙었다.
후광이 강할수록 균열도 잘 보인다. 대중은 완벽한 셰프를 원한 것이 아니다. 다만 완성도를 말해온 사람이 불완전한 상황 앞에서 가장 먼저 정직하기를 기대했다.
사람들은 안성재를 '원칙의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런데 그의 레스토랑에서 원칙과 신뢰의 문제가 불거졌다. "현장 직원의 실수였을 뿐"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방송에서 본 원칙주의 이미지가 과장된 것 아니었나"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여론이 차가워지는 순간은 후자다. 사람은 기대를 철회할 때, 꽤 냉정해진다.
논란을 키운 건 실수 이후의 리듬이었다. 사과 이후 개인 유튜브 콘텐츠 업로드가 논란이 된 것도 같은 이유다. 영상이 사전에 예약된 콘텐츠였고 제작 일정상 불가피한 부분이 있었다 해도, 대중의 감정은 그런 내부 사정을 기준으로 달래지지 않는다.
사과는 문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과 이후의 행동, 침묵, 콘텐츠, 일정까지 함께 고려된다. 말로는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하면서 외부에 보이는 리듬이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으면, 대중은 그 사과를 감정보다 절차로 받아들인다. 위기 국면에서 중요한 건 실제 의도만이 아니다. 외부에서 어떻게 보이는가도 현실이다.
또 안성재는 뒤늦게나마 책임을 인정했지만, 대중이 원한 건 정교한 설명보다 빠른 인정이었다. 신뢰는 실수했을 때 즉시 멈추고, 정확히 설명하고, 고객 앞에서 먼저 낮아지는 태도에서 생긴다.
물론 대중의 공분은 때로 과열된다. 한 사건을 계기로 인물을 통째로 무너뜨리려는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안성재가 쌓아온 성취와 이번 대응의 문제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 비판은 필요하지만, 화형식이 비평은 아니다.
이번 논란은 파인다이닝에 메시지를 남겼다. 고가의 경험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맛일까, 분위기일까, 이름값일까. 아니다. 마지막에는 신뢰다. 접시는 치우면 사라진다. 하지만 의심은 계산이 끝난 뒤에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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