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다가오면 정치인들의 숫자는 커진다. 수천억 원, 수십만 개, 수만 호 등 숫자는 늘 웅장하고 약속은 언제나 희망적이다. 그러나 시민이 정말 궁금해 하는 것은 숫자의 크기가 아니다. 그 숫자가 현실이 되는 길이다. 어떻게, 어디에, 언제 가능하냐는 질문이다.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18일 서울시청 앞에서 청년·신혼부부 주거대책을 발표했다. 핵심은 분명했다. 월세 지원 확대, 신혼부부용 실속형 분양주택 1만호, 공공임대 3만호, 청년 임대주택 5만호, 그리고 내년까지 8만7000호 공급 및 착공이다. 얼핏 들으면 꽤 야심찬 그림이다. 청년과 신혼부부의 전월세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문제의식 자체는 평가할 만하다. 서울의 젊은 세대가 집값과 월세 앞에서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포기하고, 미래를 접는 현실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의도와 좋은 정책은 같은 말이 아니다. 더구나 서울시장 후보라면 더더욱 그렇다. 서울시장은 시민단체 활동가도 아니고, 구청장과도 다르다. 대한민국 최대 행정조직을 움직여야 하는 자리다. 그래서 서울시정은 선의보다 설계가 중요하다.
둘째는 언제다. 정 후보는 '내년까지 8만7000호'라는 표현을 반복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수는 완공이 아니라 '착공' 기준이다. 시민들이 흔히 생각하는 공급은 입주 가능한 집이다. 그러나 행정에서 착공과 입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재개발·재건축은 주민 동의, 조합 구성, 심의, 인허가, 이주, 공사라는 긴 과정을 거친다. 서울시청에서 기자회견을 했다고 해서 내일 공사가 시작되는 구조가 아니다. 특히 노후 공공임대 재건축은 주민 이주 대책과 예산 문제가 얽혀 있어 속도를 내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묻게 된다. 정말 내년까지 가능한가.
셋째는 어떻게다. 정 후보는 SH를 다시 주거복지기관으로 되돌리겠다고 했다. 그동안 서울링과 한강버스 등 오세훈 시장의 상징사업에 SH가 동원되며 본래 기능이 약화됐다는 비판도 곁들였다. 정치적 차별화로서는 분명한 메시지다.
그러나 여기서도 질문은 남는다. SH를 주거복지기관으로 되돌린다면, 필요한 재원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2만호 매입임대 비용은 얼마나 들고, 공공임대 확대 과정에서 발생할 재정 부담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서울링과 한강버스를 비판했다면, 그 사업 예산 중 어느 정도를 실제 주거재원으로 전환할 것인지도 설명해야 했다.
서울시정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서울은 이미 시스템이 정교하게 작동하는 도시다. 시장 한 사람의 의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시장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설계도를 명확히 가져와야 시스템도 움직인다. 예산, SH, 도시계획, 주민 협의, 중앙정부 협력까지 한 치의 오차 없이 맞물려야 한다.
그래서 서울시장 후보의 기자회견은 숫자가 아니라 디테일에서 평가받는다. 정 후보의 이날 발표는 정책 철학 만큼은 비교적 선명했다. 청년·신혼부부 중심의 주거복지, 공공임대 강화, SH 역할 재정립이라는 방향성은 읽혔다. 오세훈식 민간 중심 공급과 차별화하려는 의도도 분명했다. 그러나 철학과 실행은 다른 문제다.
이날 기자회견 현장에서 느껴진 것은 숫자의 자신감보다 실행계획의 불확실성이었다. 공약은 있었지만, 시민이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 즉 '어디에, 언제, 어떻게'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했다.
서울시민은 이제 구호에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서울 집값과 전월세는 삶의 문제이자 생존의 문제다. 그래서 더 냉정하다. 숫자가 큰 공약일수록 더 세밀한 검증을 요구한다.
정치인은 약속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서울시장은 약속만으로는 부족하다. 설계도를 보여줘야 한다. 지금 서울 시민이 보고 싶은 것은 숫자가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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