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이란전쟁 이야기] 250년 역사의 미국은 5000년 역사의 페르시아 제국, 이란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②

  • 제2부 : 조로아스터의 불꽃은 왜 아직도 꺼지지 않았는가

이란은 단순한 중동의 국가가 아니다. 키루스 대제의 나라이고, 로마와 700년 동안 맞섰던 나라이며,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 문명을 연결했던 문명국가다. 그러나 역사만으로 오늘의 이란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란을 움직이는 진짜 힘은 군사력이나 석유, 핵개발 프로그램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정신적 토대와 종교적 세계관, 그리고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집단적 기억이 오늘의 이란을 만들고 있다. 미국은 이번 전쟁에서 혁명수비대의 전력과 핵시설의 규모를 분석했고 미사일 사거리와 드론 생산 능력을 계산했다. 그러나 이란이라는 국가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은 군사기지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었다. 그것은 조로아스터의 불꽃이었고, 카르발라의 순교 정신이었으며, 호메이니 혁명이 남긴 독립의 의지였다. 미국은 군사력을 보았지만 이란은 역사를 보았고, 미국은 현재를 계산했지만 이란은 문명을 계산했다.

오늘날 세계는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를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정신적 뿌리를 조금 더 깊이 추적해 들어가면 조로아스터교라는 거대한 문명의 원천을 만나게 된다. 기원전 1000년 무렵 페르시아 지역에서 등장한 조로아스터는 인간 세계를 선과 악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보았다. 선의 신 아후라 마즈다와 악의 세력 앙그라 마이뉴가 맞서는 세계관은 훗날 천국과 지옥, 최후의 심판, 구원과 악마라는 개념으로 발전하여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비록 이란은 7세기 이후 이슬람화되었지만 조로아스터교가 남긴 정신적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이란 사회에는 정의와 불의, 선과 악, 저항과 순교라는 도덕적 세계관이 강하게 남아 있으며, 이러한 정신은 국가 정체성의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

이러한 조로아스터적 세계관은 이슬람, 특히 시아파와 만나면서 더욱 강력한 정신적 힘을 형성하게 된다. 오늘날 세계 무슬림의 절대다수는 수니파지만 이란은 예외다. 이란은 시아파 세계의 중심 국가이며 사실상 시아파 문명의 수도라고 할 수 있다. 그 배경에는 16세기 사파비 왕조가 있다. 당시 페르시아는 수니파 초강대국인 오스만제국과 맞서야 했고, 독자적인 문명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시아파를 국교로 채택했다. 그 결과 이란은 같은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도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언어도 다르고 역사도 다르며 세계관도 다르다. 사우디가 아랍 세계의 중심이라면 이란은 페르시아 문명의 계승자다. 같은 이슬람이라는 이름 아래 있지만 사실상 서로 다른 문명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아파의 핵심 정신은 카르발라에서 탄생했다. 서기 680년 예언자 무함마드의 손자인 이맘 후세인은 압도적인 병력의 우마이야 왕조 군대에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군사적으로는 패배였지만 시아파는 이를 정의를 위한 순교로 기억한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이란에서는 매년 아슈라 행사가 열리고 수백만 명이 후세인의 희생을 기린다. 이것은 단순한 종교행사가 아니다. 국가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집단 의식이다. 시아파 세계에서 희생은 패배가 아니다. 정의를 지키기 위한 증언이며 미래 세대에게 남기는 역사적 유산이다. 서구의 전략가들이 경제 제재와 군사 압박만으로 이란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정신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반세기 동안 이란은 수많은 위기를 겪었다. 1980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침공하면서 시작된 이란-이라크 전쟁은 무려 8년 동안 이어졌고 양국에서 100만 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미국의 경제 제재는 계속되었다. 국제 금융망에서 사실상 배제되었고, 첨단 기술 도입은 제한되었으며, 원유 수출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 체제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러한 압박은 많은 이란인들에게 "우리는 외세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집단적 자의식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서방의 시각에서는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란의 역사와 종교를 이해하면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은 이러한 정신을 현대 정치 체제로 옮겨 놓은 결정적 사건이었다. 당시 팔레비 왕조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중동 동맹국 가운데 하나였고, 테헤란은 중동에서 가장 현대화된 도시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러나 화려한 경제 성장의 이면에서는 정체성 상실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었다.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그의 혁명은 단순한 종교혁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독립혁명이었고, 페르시아 문명의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민족혁명이었다. "우리는 미국의 위성국가가 아니다"라는 선언은 단순한 정치 구호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외세와 맞서 살아온 페르시아의 역사적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었다.

혁명 이후 등장한 혁명수비대는 현대 이란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 가운데 하나다. 서방 언론은 종종 혁명수비대를 군사조직 정도로 설명하지만 실제 모습은 훨씬 복합적이다. 그들은 군대인 동시에 정보기관이며 경제세력이고 정치세력이다. 건설과 에너지, 금융과 통신 분야까지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혁명수비대는 혁명의 수호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단순히 국경을 지키는 군대가 아니라 체제 자체를 지키는 조직이다. 이번 전쟁에서도 혁명수비대는 미사일 운용과 드론 공격, 정보전 수행, 해외 친이란 네트워크 관리까지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미국은 정규군을 상대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혁명수비대와 같은 독특한 구조를 상대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란 핵개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서방에서는 이를 핵무기 개발 문제로만 바라보지만 이란인들의 시각은 다르다. 핵기술은 단순한 에너지원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 자존심이며 기술 주권의 상징이다. 흥미롭게도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혁명 이후가 아니라 친미 성향의 팔레비 왕조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미국은 오히려 이란의 원자력 개발을 지원했다. 그러나 혁명 이후 핵개발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외세의 압력 속에서도 독립적인 과학기술 역량을 확보하겠다는 국가적 의지가 된 것이다. 미국의 제재가 강해질수록 핵기술은 이란 사회에서 더욱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2015년 핵합의가 체결되었을 때도 이란은 기술 포기가 아니라 권리 인정으로 받아들였으며, 이후 미국의 합의 탈퇴는 다시금 "결국 우리를 지킬 것은 우리 자신뿐"이라는 인식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미국과 이란의 가장 큰 차이는 시간에 대한 감각이다. 미국은 4년 단위의 선거를 생각하고 다음 분기의 경제지표를 걱정한다. 그러나 이란은 다르다. 그들은 사산조를 기억하고, 사파비 왕조를 기억하며, 카르발라를 기억하고, 호메이니 혁명을 기억한다. 680년의 사건이 오늘날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500년 전의 왕조가 오늘날 국가 정체성의 일부가 된다. 미국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바로 이 긴 시간의 감각이었다. 미국은 현재를 보았지만 이란은 역사를 보았고, 미국은 군사력을 계산했지만 이란은 문명을 계산했다.

106일 전쟁은 끝났지만 미국은 이란이라는 나라를 새롭게 공부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되었다. 이란은 단순한 석유 국가도 아니고, 단순한 신정국가도 아니며, 단순한 반미 국가도 아니다. 이란은 조로아스터의 불꽃을 기억하는 나라이고, 카르발라의 순교를 기억하는 나라이며, 호메이니 혁명이 만든 독립의 의지를 아직도 간직한 나라다. 미국은 핵시설을 보았지만 이란은 문명을 보았다. 미국은 제재를 계산했지만 이란은 세대를 계산했다. 미국은 군사력을 믿었지만 이란은 역사와 신념을 믿었다. 그리고 바로 그 차이가 이번 전쟁의 본질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과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문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전쟁이 끝난 지금 이란 앞에는 또 하나의 거대한 과제가 놓여 있다. 그것은 살아남는 것을 넘어 번영을 만드는 일이며, 저항을 넘어 재건을 이루는 일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새로운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전후 복구와 새로운 실크로드, 테헤란로와 AI 혁명, 그리고 홍익인간 정신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이제 시작되려 하고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금요예배에서 한 시민이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사진을 들고 있다 미국과 이란은 종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Reuters연합뉴스
지난 12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금요예배에서 한 시민이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사진을 들고 있다. 미국과 이란은 종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Reuters=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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