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한국 라이선스 공연일 정도로 K-뮤지컬이 현지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한때 서양 라이선스 뮤지컬이 주도했던 중국 시장에서 한국 창작 뮤지컬이 빠르게 입지를 넓히며 새로운 한류 콘텐츠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이다.
2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한한령에도 불구하고 K-뮤지컬은 중국과의 문화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서양 뮤지컬보다 중국 관객들의 공감을 더 쉽게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뮤지컬 '팬레터'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2016년 한국 초연 당시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2022년 중국에서 현지화 버전으로 다시 제작됐다.
중국판 '팬레터'는 배경을 서울이 아닌 상하이로 옮겼다. 하지만 1930년대 일본 식민 지배 아래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삶과 고민이라는 원작 줄거리는 그대로 유지해 중국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팬레터'는 2022년 중국 초연 이후 매년 10개 이상의 도시에서 공연돼 현지 팬층을 확대해 왔다.
'팬레터'만이 아니다. K-뮤지컬 '미아 파밀리아'와 '미오 프라텔로'도 각각 2020년 8월과 2021년 4월 중국 라이선스 공연으로 초연한 이후 꾸준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 학술지 '인문사회과학탐색' 4월호에 실린 한 연구논문은 K-뮤지컬이 중국에서 성공한 배경으로 양국의 문화적 공통점을 꼽았다. 논문은 "중국과 한국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해 문화적 전통과 사회적 가치, 미적 감각에서 유사성을 공유한다"며 "이는 서양에서 시작된 뮤지컬이 양국에서 현지화하는 데 문화적 토대를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현지화 각색 과정에서 역사 문화적 배경만 중국 실정에 맞게 바꾸는 경우도 적지 않다. '팬레터'처럼 배경을 서울에서 상하이로 옮기는가 하면,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중국판으로 제작되는 과정에서 시대적·공간적 배경 자체를 새롭게 재구성하기도 했다.
K-뮤지컬의 중국 진출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한한령(限韓令, 한류 제한령)의 영향권에서 다소 비켜나 있었던 뮤지컬 산업의 특성도 작용했다. 중국 정부는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한한령을 공식 발표한 적은 없지만, 한국 영화와 드라마, K팝 가수들의 중국 활동은 사실상 중단됐다. 반면 뮤지컬은 직접적인 규제를 상대적으로 덜 받으면서 최근 수년간 중국 시장에서 꾸준히 기반을 넓혀온 것이다.
중국 뮤지컬 시장 자체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공연예술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전국 뮤지컬 공연 횟수는 1만9700회로 전년보다 15% 이상 증가했고, 관객 수는 818만 명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약 80%가 35세 미만의 젊은 층인 것으로 집계됐다.
업계는 올해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문화 교류를 점진적으로 확대하기로 합의한 만큼 뮤지컬 분야의 협력도 한층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시장에서 중국 창작 뮤지컬의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서울 대학로에서는 '#0528', '나비변신' 등 중국 라이선스 작품이 무대에 올라 호응을 얻었고, 올해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는 중국 고전 '홍루몽'을 바탕으로 한 창작 뮤지컬 '보옥'이 초청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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