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건의 심리렌즈] '나는 솔로' 32기 영숙은 왜 영수를 끝까지 몰아붙였을까?

  • 과거 관계의 기억과 관계적 욕구, 감정이 현재의 해석에 미치는 영향

사진SBS Plus ENA 나는 솔로 방송 캡처
[사진=SBS Plus, ENA '나는 솔로' 방송 캡처]

▲ 본 코너는 개인에 대한 비난이나 낙인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연애 예능·리얼리티에 드러난 장면과 선택을 바탕으로, 보편적인 심리와 관계 구조를 해석합니다.

SBS Plus·ENA '나는 SOLO' 32기 출연자 영숙과 영수의 갈등은 술자리에서 시작됐다.

앞서 영숙은 영수에게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다. 이후 이어진 랜덤 데이트에서 영수는 다른 여성 출연자인 영자와 술을 마셨고, 숙소로 돌아와서도 출연자들의 술자리에 합류하려 했다.

이를 본 영숙은 영수가 자신과 대화하기로 해놓고 술을 마셨다고 받아들였다.

"제 말은 아예 생각을 못했어요?"
"술을 마셨다는 건 밤에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럼 내일 아침에 대화할 생각이었던 거예요?"

 
사진SBS Plus ENA 나는 솔로 방송 캡처
[사진=SBS Plus, ENA '나는 솔로' 방송 캡처]

영수는 대화할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반드시 그날 밤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다음 날 아침에 이야기해도 된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숙은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두 사람의 마찰을 술을 싫어하는 여자와 술을 좋아하는 남자의 문제로만 보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영숙이 원한 건 영수가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가 문제 삼은 건 자신을 대하는 태도였다.

술을 마셨어도 자신과의 대화를 중요하게 여기고, 기다린 마음을 알아주며, 자신을 뒷전으로 미룬 선택에 미안함을 보이는 것이었다. 결국 자신이 영수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냐는 것이었다.
 
▲ 기대가 약속으로 바뀌는 순간

'나는 솔로'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영숙은 이상형으로 "다정하고, 자신보다 똑똑하며, 중심이 확실한 사람"을 이야기했다. 

영숙이 원하는 '똑똑함'은 학력이나 지식만을 뜻하지 않을 수 있다. 상황을 읽고, 상대의 말을 기억하고, 자신의 욕구를 조절하며, 관계가 흔들릴 때 적절히 수습하는 능력일 가능성이 있다.

 
사진SBS Plus ENA 나는 솔로 방송 캡처
[사진=SBS Plus, ENA '나는 솔로' 방송 캡처]

술을 자제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상처받은 경험이 있다면, 새로운 이성에게는 자신이 일일이 통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절제하는 모습을 기대했을 수 있다. 자신이 대화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을 들었다면, 상대가 그 의미를 알아차리고 술을 마시지 않은 채 돌아오는 것이 영숙이 생각한 '중심 잡힌 사람'의 행동이었을 것이다.

다만 그 기대는 영숙과 영수 사이에서 구체적인 약속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영수에게 "맨정신으로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긴 했지만, "오늘 랜덤 데이트에서는 술을 마시지 말고, 돌아온 뒤 나와 이야기하자"는 합의는 없었다.

영숙은 자신의 기대를 영수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수가 그 기대대로 행동하지 않자, 눈치 부족이 아니라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일로 받아들였다.

'술을 마셨다'는 행동이 '나와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 '내 말을 무시했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번진 것이다.
 
▲ 현재의 술에 과거의 감정이 더해졌다

영숙이 그토록 영수를 몰아붙인 데에는 과거의 감정이 겹쳤을 가능성이 있다. 또는 자신이 관계에서 어떻게 여겨지는지를 확인하는 태도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앞서 영숙은 술에 취한 영철의 모습을 보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음주 자체는 괜찮지만, 집에 들어오면서 다시 술을 사 오는 행동은 싫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숙의 언행에서는 유독 술과 관련한 이야기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술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술을 마신 뒤 관계에 소홀해지는 사람에게 좋지 않은 기억이 남아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영숙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반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쪽에는 관계의 문제가 놓여 있을 수 있다. 상대가 술을 마신 뒤 자신의 말을 듣지 않거나, 소통이 되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먼저 선택하는 모습에 더 상처받는 것이다.

영숙이 영수에게 "술을 마셨다는 건 밤에 나와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냐"고 반복해서 물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영숙에게 영수의 음주는 랜덤 데이트의 술자리만이 아니었다. 자신보다 술과 그 자리의 즐거움을 먼저 선택했다는 메시지처럼 받아들였다.

그 배경에는 전 남편과의 관계에서 해소하지 못한 원망이 겹쳤을 가능성이 있다. 과거에도 상대가 술을 마신 뒤 자신의 마음을 살피지 않거나, 아무리 말해도 달라지지 않는 모습을 반복해서 경험했다면 영수의 행동은 한 번의 음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사람도 술을 마시면 나는 뒷전이 되는구나.'
'또 내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욕구를 먼저 선택하는구나.'
'결국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판단이 빠르게 올라왔을 수 있다.

현재의 사람이 과거의 상대와 닮은 행동을 보이면, 당시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감정이 다시 활성화되기도 한다. 그때의 서운함과 분노가 현재 사건에 더해지면서, 지금 벌어진 일보다 반응이 커지는 것이다.

영숙이 영수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술을 마신 행동을 자신과 대화할 의사가 없었다는 의미로 확장한 데에도 이런 감정이 작용했을 수 있다. 영수에게만 화를 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상대에게 끝내 받아내지 못한 사과와 후회까지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숙이 바란 건 술을 마셨어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자신의 말을 기억하며, 대화를 위해 돌아오는 사람이었다. 과거에 그 바람이 충분히 충족되지 않았기에, 영수가 같은 결핍을 건드린 순간 오래 쌓인 항의까지 한꺼번에 쏟아졌을 가능성이 있다.
 
▲ 설명을 들으면서도 질문을 반복한 이유

영숙은 영수의 설명을 들은 뒤에도 "나와 대화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냐"고 거듭 물었다. 대화할 의사가 있었는지만 확인하려 했다면, 영수의 해명을 들은 뒤 질문을 멈출 수 있었다. 그런데도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는 건, 영숙이 원한 답이 사실 확인만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영숙이 원한 건 관계적 반응일 수 있다.

"기다렸을 텐데 미안하다."
"너와 대화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게 아니다."
"술을 마신 선택이 너에게 상처가 될 줄 몰랐다."

그래서 영숙은 "대화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대화를 끊지는 않았다. 영수에게 대화를 요청하려 타이밍을 살폈고, 동료 출연자 순자에게는 영수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사진SBS Plus ENA 나는 솔로 방송 캡처
[사진=SBS Plus, ENA '나는 솔로' 방송 캡처]

겉으로는 밀어내지만 안쪽에서는 더 강하게 다가오기를 바라는 항의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상대에게 사랑을 확인시키기보다 처벌받는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영수 역시 인터뷰에서 "이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라고 의아해하며 "계속 같은 얘기가 반복되는 것 같아서 호감도가 살짝 떨어졌다"고 밝혔다.

영숙은 관계를 붙잡기 위해 추궁했지만, 추궁이 오히려 상대를 멀어지게 만든 것이다.
 
▲ 서운함과 해석을 분리해야 한다

영숙의 서운함이 근거 없는 건 아니다. 영수는 영숙이 맨정신으로 대화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온 뒤 영숙과 이야기하기보다 술자리에 합류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도 충분히 섭섭할 수 있다.

다만 서운함이 정당하다고 해서 모든 해석이 사실이 되는 건 아니다.

영수가 술을 마신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영수가 애초에 대화할 생각이 없었고, 영숙을 무시했으며, 존중하지 않았다는 결론은 해석이다.

사실과 해석을 구분하지 못하면 오해는 깊어진다. 자신의 감정만 증거가 된다.

'내가 이만큼 화가 났으니 상대가 큰 잘못을 한 것이다.'
'내가 기다렸으니 상대도 약속을 알고 있었어야 한다.'

 
사진SBS Plus ENA 나는 솔로 방송 캡처
[사진=SBS Plus, ENA '나는 솔로' 방송 캡처]

강한 감정은 기억도 왜곡한다. 영숙은 "데이트 후 이야기하자고 말한 것 같다"고 표현했다. 자신의 기다림이 강할수록 실제로 약속을 했다고 기억했을 가능성이 있다. 기대와 대화의 기억이 섞인 것이다.

상대가 과거의 사람처럼 변하지 않도록 잡도리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지금의 사람을 지금 벌어진 일만큼 정확히 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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