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I 기본·원칙·상식] 日 개입에도 못 지킨 160엔…중요한 건 테크니컬보다 펀더멘털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일본 외환당국의 환시 개입에 달러당 160엔 아래로 떨어졌던 엔 환율이 하루도 채 안 돼 다시 160엔을 넘어섰다. 30일 이뤄진 일본의 환시 개입은 시장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타 미국과 발맞춰 공조하는 등 기술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기습 작전이었다. 하지만 이제 투자자들은 "개입해도 얼마나 버티겠느냐"에 더 관심을 두는 모습이다.

실제로 일본 외환당국은 지난 4월 말 엔 환율이 달러당 160엔을 넘어섰을 때도 1달간 약 11조 7349억 엔(약 105조원)을 투입해 환율을 160엔 아래로 끌어내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160엔이 무너졌다. 외환당국의 개입이 시장 흐름을 바꾸기보다 시간을 벌어주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의미다.

가장 큰 이유는 금리다. 미국과 일본 간 금리 차가 2.5% 포인트 이상이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전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다음 번 회의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따라서 이 같은 금리 차가 유지되는 한 엔저 추세 역시 쉽게 바뀌기 어려운 형국이다.

문제는 엔저가 더 이상 일본 경제의 '축복'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 일본은 자동차와 전자제품을 수출해 먹고사는 전형적인 제조업 국가였다.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 일본 제품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기업 실적도 개선됐다. 이에 엔저는 경제에 호재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일본 기업들은 이미 생산기지 상당수를 해외로 이전한 가운데 과거처럼 엔저가 곧바로 수출 증가와 국내 생산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반면 에너지, 식량을 대부분 수입하는 까닭에 엔저로 수입물가만 급등하고 있다. 가계의 부담은 커지고 내수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혁명의 수혜를 일본이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일본은 TSMC를 유치하고 라피더스를 육성하며 '반도체 부활'을 선언했지만, 핵심 장비와 소재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첨단 반도체 생산의 주도권은 여전히 대만과 한국, 미국이 쥐고 있다.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해도 산업 구조를 단기간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번 주 '일본 반도체 거점' 구마모토에 닥친 강진은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구조개혁의 지연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노동력을 줄이고 잠재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있고,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를 훌쩍 넘지만 재정지출은 계속 늘어난다. 이번 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부채 확대 우려에도 불구하고 내년 4월부터 식품소비세 인하를 발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행 역시 급격한 금리 인상을 단행하기 어려운 처지다. 금리를 올리면 정부의 이자 부담과 금융시장 충격이 동시에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최근의 엔저는 단순한 환율 문제가 아니다. 일본 경제의 성장 둔화와 산업 경쟁력 변화, 인구구조 악화, 통화정책의 한계 등 경제 펀더멘털이 한꺼번에 반영된 결과다. 전날 일본 정부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1.3%에서 0.9%로 하향 조정한 것만 봐도 이 같은 일본 경제의 딜레마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환시 개입은 일시적으로 환율의 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도 구조적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한다.

한국 역시 이를 남의 일로만 봐서는 안 된다. 미래 산업 경쟁력을 키우고 생산성을 높이는 구조개혁 없이 환시 개입이나 단기 처방만으로는 통화도, 경제도 지켜낼 수 없다는 것이 현재의 일본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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